▶ LA필하모닉 위촉 작곡가 신동훈씨
▶ 17분 오케스트라 작품 ‘Upon His Ghostly Solitude’
오스모 벤스케 지휘, 4월7·8일 디즈니홀 세계 초연
LA 필하모닉과 밤베르크 심포니, 서울시향이 공동 위촉한 작품을 선보이는 신동훈 작곡가.
다음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는 또 하나의 특별한 연주가 펼쳐진다. 바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곡가 신동훈씨의 작품이 초연되기 때문이다. 4월 7일과 8일 LA필하모닉이 세계 초연하는 ‘그의 유령같은 고독에 대해서’(Upon His Ghostly Solitude)의 작곡가 신동훈씨는 아시안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하 카라얀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2021) 수상자다. 당시 위촉받은 첼로 콘체르토는 2022년 5월 베를린필의 카라얀아카데미 50주년 기념공연에서 베를린필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지휘로 초연됐다. 2020년 한국 작곡가 최초로 영국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젊은 작곡가상’에 선정되어 이름을 알린 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 28일 LA필 위촉곡의 초연을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는 작곡가 신동훈씨와 줌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LA필과의 세계 초연인데
▲2019년 LA필과 밤베르크 심포니, 서울시향이 위촉한 곡이다. 당시에는 성시연 지휘자가 이끄는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세계 초연이 예정돼 있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되었다. 이번 시즌 연주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는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때부터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다.
- 예이츠의 시 ‘1919’를 소재로 택한 이유가 있나
▲2년 동안 아내와 함께 런던의 집에만 있었다. 예이츠의 시집을 뒤적이다 ‘1919’(아일랜드 혁명을 진압하는데 사용된 블랙 앤 탠스의 극악무도한 폭력에 대한 시)를 다시 읽었다. 오늘날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영감을 받았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더라. (이하 작곡 노트 참고)
- ‘그의 유령 같은 고독에 관해서’는 어떤 곡인가
▲17~18분 길이의 오케스트라 곡이다. 다크한 음악이고 표현주의적, 아이러니칼하다. 오케스트라는 3관 편성으로 베토벤 심포니보다는 큰 규모이고 말러 심포니보다는 작은 악기 편성이다.
- 브람스 피아노 콘체르토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사이에 연주되는데
▲기대되는 프로그램 편성이다. 어두운 곡들이 연주된 후 시벨리우스 교향곡 가운데 밝고 긍정적인 음악인 3번 교향곡으로 넘어 간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행복한 결말의 느낌이 좋다.
- 작곡에서 주로 영감을 받는 분야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많은 음악가들이 문학에 매혹되었듯이 내게도 문학과 음악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LA필의 세계초연 이후 오스모 벤스케 지휘자와 오는 5월5일과 6일 밥베르크 심포니의 독일 초연을 이어가고, 12월21~22일에는 얍 반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아시아 초연을 하게 된다. 미국에는 자주 올 것 같다. 다음 시즌 휴스턴, 시애틀, 퍼시픽 심포니가 ‘카프카의 꿈’, ‘쥐와 인간의’(Of Rats and Men) 등 각기 다른 3곡을 선보인다.
- 디즈니홀을 찾는 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제가 쓰는 곡들은 음악의 전통에 기반을 갖고 있어 전달이 잘 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좋겠다.
■신동훈 약력
▲서울대 작곡과 졸업. ▲조지 벤자민을 따라 영국 런던 유학. 길드홀 음악학교에 석사 학위. ▲킹스 칼리지 런던 박사학위 과정. ▲2007~14년 서울시향 작곡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재독 작곡가 진은숙 사사. ▲2012년 헝가리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팝업’ 초연. ▲ 2016년 영국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RPS) 선정 ‘올해의 작곡가’. ▲ 2020년 영국 비평가협회 ‘젊은 작곡가상’ 수상. ▲ 2021년 베를린필 산하 카라얀 아카데미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 수상.
■ 신동훈의 작곡 노트
‘그의 유령같은 고독에 대하여’
“예이츠와 베르크에 바치는 연서”다음달 7일 LA필하모닉이 세계 초연하는 신동훈의 곡 ‘그의 유령같은 고독에 대하여’(Upon His Ghostly Solitude)는 역사의 순환에 대한 음악적 묵상이다. 시인 예이츠(W.B. Yeats·1865-1939)와 작곡가 알반 베르그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17분 길이로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첫 선을 보인다. LA필과 서울시향, 밤베르크 심포니가 공동 위촉한 이 곡의 작곡가 신동훈의 노트를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W.B. 예이츠의 ‘1919’라는 시를 처음 접한 것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를 통해서였다. 보르헤스의 의도는 분명해보인다. 예이츠의 시 ‘1919’의 두번째 부분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단편소설 주제인 역사의 순환성에 대한 아이러니를 강조하고 싶어했다. 시 전체를 찾을 만큼 흥미를 느꼈지만 번역시가 없었다. 서울에 살면서 영어를 거의 못하는 10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9년 런던에서 팬데믹 혼란 속에 다시 한번 예이츠의 시집을 만났다. 1919년 예이츠가 묘사한 절체절명의 세계와 공포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작품의 제목인 ‘그의 유령 같은 고독에 대하여’는 그 시의 첫 대목에서 인용한 것이다. 폭력적 광란에서 극도의 낭만과 순진한 서정에 이르기까지 대조적인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넘나드는 오케스트라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압도적이고 생생한 영감이 되었다.
첫 악장 도입부에 등장하는 4개의 다른 화음을 핵심 엔진으로 이후 악장에서 변경되고 다양해진다. 예이츠의 시 구절 ‘옛것 속에서 선회하는 대신/ 새로운 옳음과 그름을 내밀며 선회한다’처럼 화음의 변이와 변화를 통해 양식, 음색, 음조의 경계를 넘는다. 마지막 악장은 예이츠가 노래한 ‘사람들은 모두 무용수, 그들의 궤적은/ 요란하게 울리는 징 소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한탄이다. 이렇게 음악은 궁극적 파괴를 향해 나아가고 이전의 악장에서 나온 조화롭고 주선율이 서로 병치되어 뒤틀리고 변형된 형태로 다시 사용된다.
시의 주제인 아이러니와 역사적 순환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억시키듯 조화롭던 1악장의 클라이맥스는 궁극적인 파괴의 순간에 다시 한번 갑자기 등장하지만 ‘징 소리’에 의해 격렬하게 끊어진다. 음악은 평화로운 시작점으로 되돌아가지만 절망의 비명에 의해 갑자기 중단되기도 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알반 베르크의 ‘3개의 관현악 소품’과 점점 더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예이츠의 시처럼 낭만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제스처를 통해 절름발이 세계의 공포와 절망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베르크와 말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2악장과 마지막 악장을 왈츠와 행진곡으로 작곡했다. 제게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두 가지 음악 형식으로 곡을 쓰기를 수년간 갈망해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처받은 세상에서 고통받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중심을 지탱할 수 없을 때’에도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던 예이츠와 베르크에게 보내는 레브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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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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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기자님 글이 좋아 꼭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