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대출금리로 부유층 유치…금리 상승에 무너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로이터=사진제공]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으로부터 시작된 은행권 불안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기존 위기 사례와 달리 주로 부유층 고객을 상대로 영업해온 은행들이 이번 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27일 로이터통신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과거 빠른 성장을 위해 유치했던 부유층 고객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휘청거렸고 미국 지역은행 위기의 한 진원지가 됐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SVB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 우려 등 위기설이 제기됐고 주가가 급락했다.
미국 대형 은행 11곳이 이 은행에 총 300억 달러(약 39조원)를 예치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고 이 은행 주가는 또 내려갔다.
1985년 제임스 허버트가 설립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부유층 고객에게 대출 시 우대 금리 혜택을 제공하며 이들을 유치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도 2012년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소재 자택에 대해 금리 1.05%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서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 보험 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2천만원)까지인 까닭에, 이 같은 전략은 다른 지역 은행들보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주주의 연간 이익률이 19.5%로 다른 은행의 두 배가 넘는다고 밝혔다.
뉴욕시 기록에 따르면 지난달 퍼스트 리퍼블릭은 맨해튼의 한 콘도 매수자에게 30년 만기로 1억 달러(약 130억원)를 4.6% 금리로 대출해줬다.
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맨해튼 주택 기준 점보론(고가 주택 모기지) 대출 금리 5.5%보다 낮고,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자료 기준으로 지난달 30년 만기 점보론에 대한 평균 금리보다도 1∼2% 포인트 더 낮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이 결국 독이 됐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초고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는데도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여전히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손실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 은행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만기 투자 포트폴리오 손실은 48억 달러(약 6조2천4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의 5천300만 달러(약 689억원)보다 크게 불어났다.
지난 20일 모건스탠리는 퍼스트 리퍼블릭의 총예금 중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 인출됐다고 추정했다.
만약 정부 개입이나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없다면 이 같은 손실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인수자가 나타나거나 부채를 매각, 유동성을 확보해 만회해야 할 것이라고 로이터는 관측했다.
심지어 이 보고서에 따르면 퍼스트 리퍼블릭 대출의 절반 이상이 상환이 어려운 주택담보대출, 특히 점보론으로 구성돼있었다.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촉발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비롯해 과거의 금융위기는 주로 부채 상환 능력이 약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원인이 됐다.
그러나 SVB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등으로 인한 이번 은행권 불안은 현재까지 그와는 반대로 부유하고 신용 등급이 가장 높은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줬던 은행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진단했다.
작년에 미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추가 현금이 넘치는 고객들은 은행에서 현금을 빼서 더 높은 수익률을 주는 온라인 은행이나 머니마켓펀드(MMF)로 옮겼고 미국 국채를 사들였다.
여기에 더해 스타트업과 다른 민간 기업들이 현금을 더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은행 예금 유출로 이어졌다.
은행 예금 유출이 시작됐을 때 가장 많이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은 FDIC 보증 한도인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예금을 둔 사람들이었다.
부유층은 주로 고가의 주택을 구입할 때 은행에서 점보론을 대출받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점보론은 미국 정부 기관이 보증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이런 점보론은 낮은 금리에 고정돼있는데, 시중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해당 대출의 가치는 감소했고 이는 이를 보유한 은행에 부담이 되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고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면 불안감이 당분간은 진정될 수 있지만, 여전히 부유한 고객들의 거래로 인한 은행들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WSJ은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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