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대다수 3월 인상 예상에 OECD도 ‘더 올려라’… “금리로 은행위기 대응말라”
SVB 파산 소식에 캘리포니아주 본사 앞에 줄선 고객들 [로이터=사진제공]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를 시작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덮친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묘한 기대감을 부풀리는 듯하다.
나라별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뉴욕증시에서만큼은 그렇다.
SVB 파산 직전인 지난 9일 종가와 가장 최근 거래일인 17일 종가를 비교하면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2% 하락했지만, S&P 500 지수는 0.04%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나스닥 지수는 오히려 2.6% 올랐다.
미 은행 역사상 2위 규모인 SVB의 붕괴가 이틀 뒤 뉴욕 시그니처은행 파산,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위시한 중소 지역은행들의 연쇄 위기설로 번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해진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설도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리지는 못했다.
이러한 시장 반응은 상당 부분 각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덕분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 당국과 스위스 당국은 취약한 은행들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시스템 위기'로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정부 차원의 대책과 더불어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제공한 것은 금리전망 완화다. 은행들의 위기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 긴축의 정도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시달리던 투자자들이 '나쁜 뉴스가 실은 좋은 뉴스'라며 경제에 부정적인 소식이 나올 때마다 '연준이 고삐를 늦출 것'이라며 좋아하던 역설적 상황이 재현된 셈이기도 하다.
실제로 SVB 사태 직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직접 불 지폈던 3월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동결 또는 금리인하 기대까지 일각에서 부풀고 있다.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가 SVB 사태 후 오히려 상당폭 올랐다는 사실은 시장의 '금리 낙관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준금리와 거의 연동돼 움직이는 2년물 미 국채 금리가 SVB 붕괴 전보다 1%포인트 이상 급락한 것이나 기준금리 선물시장의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3월 동결 확률이 일주일 전 '제로'에서 현재 38%까지 올라온 것은 보다 직접적인 사례들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연준의 최종금리가 최대 5%에 그치고 연말에는 4% 근방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 큰 폭의 금리인하가 연내 단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은행발(發) 위기 가능성이 연준의 물가안정 복원이라는 지상 과제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이코노미스트 8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대다수인 76명은 연준이 오는 21∼22일 열리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동결을 예상한 전문가는 5명에 그쳤고, 노무라은행 한 곳만 0.25%포인트 인하를 점쳤다.
미 CNBC 방송도 월가 전문가 등을 인용해 3월 0.2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3월 이후의 금리 전망을 놓고서도 전문가와 투자자 사이의 시각차는 크다.
거의 1%포인트의 연내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투자자들과 달리 로이터 설문조사에서 올해 말 금리 전망에 관해 답한 전문가 63명 중 8명만이 연내 인하를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날 발간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서방 중앙은행들에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촉구하면서 미국의 경우 최대 5.25∼5.5%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몇몇 은행들의 도산이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의 인상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알바로 페레이라 OECD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파이팅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은 2008년이 아니다. 현 단계에서 시스템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은행권 위기가 확산하더라도 반드시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플레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과 은행 구제를 위한 지원 대책을 별개로 동시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SVB와 크레디트스위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 16일 예상외의 빅스텝을 단행한 근거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논리다.
미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3월 0.25%포인트 금리인상을 촉구하면서 "인플레이션과 금융 안정이라는 2개의 다른 문제는 2개의 다른 수단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추가로 무너지는 은행이 속출하지 않는 한 연준의 조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은 쉽지 않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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