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설 연휴 막바지에 찾아왔던 재활용품 분리배출 날, 며칠 새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계란 껍데기, 빈 식용유통, 기름 묻은 신문지 등을 종류별로 나눠 버리고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포장재를 스티로폼 무더기 사이에 내려놨습니다. 한없이 가벼운 스티로폼 상자들이지만 부피가 크니 마치 하얀색 산처럼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1년에 분리배출되는 스티로폼이 7만5,000톤가량 된다는데, 이 많은 스티로폼은 어디로 옮겨지고, 어떻게 우리 생활로 돌아올까요. 이동 경로를 따라가보면 귀찮다고 아무렇게나 버린 스티로폼은 재활용이 아닌 폐기 처분의 길로 접어드는 걸 직면하게 됩니다.
▲부피왕 스티로폼, 액자·욕실 발판으로 재탄생한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스티로폼의 본명은 발포폴리스티렌(EPS)입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스티렌(PS) 수지에 펜탄·부탄 등 탄화수소가스를 주입해 뻥튀기처럼 부풀린 것으로, 미국 제품명을 따 스티로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원료는 전체 부피의 2%만 차지해 경제성이 높고, 완충성·방수성·보온성도 좋다 보니 가전제품 완충제나 농·수산물 상자 등 포장재, 건축 단열재 등 다방면에서 사용됩니다. 컵라면 용기인 폴리스티렌페이퍼(PSP)도 PS를 가공해 만든 제품이라 스티로폼의 한 종류로 이해하면 됩니다.
스티로폼은 안 그래도 많이 사용됐는데 코로나19로 포장이 늘며 이용량이 급증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분리수거된 스티로폼은 7만4,815톤으로, 2019년(5만8,656톤)보다 1만6,000톤가량 증가했습니다. 분리수거된 양만 이 정도이니 실제 발생량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분리수거된 스티로폼은 재활용업체에서 모습을 바꿉니다. 먼저 파쇄기로 분쇄한 뒤 폐기물 부피를 줄이는 감용기에서 용융·압출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가래떡같이 생긴 잉곳(Ingot)이 나옵니다. 잉곳을 2차 가공하면 플라스틱의 원료인 펠릿이 됩니다. 펠릿을 가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액자나 욕실 발판, 화장실 문짝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관계자는 “펠릿으로 PS합판을 만든 뒤 가구를 제작할 수도 있고, 새 스티로폼을 섞어 단열재를 생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스티로폼이 재활용되는 건 아니다
모든 스티로폼이 전부 이렇게 재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티커나 테이프, 양념, 랩 등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은 이물질 때문입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스티로폼은 물리적 재활용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양념이 묻는 등 색이 변하면 재활용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가 △다른 재질과 코팅·접착된 스티로폼 △음식물이 묻었거나 이물질 제거가 어려운 경우 △건축용 내·외장재 스티로폼 등을 재활용 비해당 품목으로 분류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물질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재활용업체로 넘겨진 이후에 폐기되는 스티로폼 양도 상당합니다. 수도권에서 스티로폼 재활용업체를 20년 넘게 운영 중인 A씨는 “스티로폼이 들어오면 이물질을 일일이 손으로 떼는 등 정리·선별 과정을 거치는데, 내용물만 빼고 포장 이물질을 제거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특히 세척하지 않고 버린 스티로폼은 쓰레기라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또 폭신폭신해서 스티로폼처럼 보이지만 함께 재활용이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과일 그물망이나 요가용 폼롤러가 그렇습니다. 전자는 발포폴리에틸렌(EPE), 후자는 발포폴리프로필렌(EPP)으로, 우리가 말하는 스티로폼(EPS·PSP)과는 재질이 다릅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발포합성수지들을 재질별로 모을 수 있는 체계가 없고, 수거해 선별한다 해도 양이 적어 재활용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활용 넘어 감축 노력 중
재활용이 어려운 스티로폼들은 결국 소각이나 매립됩니다. 스티로폼을 태우면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은 나오지 않지만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온실가스죠. 매립하면 문제가 더 큽니다. 500년 이상 자연분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휩쓸려 바다로 날아가기라도 하면 해양생물 뱃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죠. 바다는 양식장에서 쓰는 스티로폼 부표로 인해 이미 고통받고 있습니다. 즉, 버릴 스티로폼이 생겼다면 재활용이 가능하게 깨끗이 닦아 분리배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나아가 환경을 위해 스티로폼 발생량 자체를 줄일 필요도 있습니다. 이는 정부나 기업이 주축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2019년 메인주(州)를 시작으로 스티로폼 용기 사용 금지가 확산하는 중이고, 캐나다도 지난해 말 스티로폼 용기 수입·제조를 금지했습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스티로폼 상자 대신 재사용 상자를 이용하는 사업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해 국내 유통·물류 기업들과 함께 시범사업을 진행해 다회용 택배상자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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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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