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니 부쩍 예민해진 지인들이 있다. 각 대학이 합격통보를 보내는 이때가 되면 12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살얼음판 딛듯 하루하루를 보낸다. 합격 통보와 불합격 통보 사이에서 천당과 지옥 오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못 가게 되면 아이는 17/18 생애 가장 쓴 실패를 맛보게 되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쓰리다. “엄마 말 듣고 공부 좀 할 것이지!”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모두는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마음. 아이가 초중고 1등에 일류대학-일류직장 거치며 일류인생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모들은 가능한 모든 수고를 한다. 아이가 행여 발을 잘못 디뎌 바닥으로 떨어질까봐 안전망을 치고 또 치는 것도 부모의 일이다.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인 시대에 자녀교육은 일대과업이 되었다. 자녀의 성공이 인생목표인 부모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일에 부모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가 흔하다. 과잉보호는 자녀양육의 한 추세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어느 아빠의 가없는 아들사랑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지난 달 말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되었던 정순신 변호사 사태가 여야 공방 속에 정치쟁점화 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검사 전성시대. 정 변호사 역시 검사출신으로 요직에 임명되었지만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드러나면서 하루 만에 물러났다.
그의 아들은 2017년 명문사립고인 민족사관 고교 재학 당시 기숙사 같은 방을 쓰던 동급생에게 수개월 언어폭력을 가했다가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아들의 학폭도 문제이지만 진짜 문제는 아빠의 태도. 피해학생에 대한 배려는 털끝만큼도 없고 아들에게 흠집 생길세라 아들 감싸기에 전력투구했다. 학폭위의 처분이 불만인 아빠는 법 전문가답게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해 1심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갔다가 패소했다. 결국 아들은 전학을 갔고 현재 서울대 재학 중이다.
자녀가 어려움에 처하면 어떻게든 돕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지켜야할 선은 있다.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해 후안무치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한국민들은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양심도 원칙도 없는 비뚤어진 잣대 앞에서 박탈감이 깊다. 고속성장이 몰고 온 천박한 세태의 일면이다.
한국에는 요즘 학폭 전문 법조인까지 생겼다고 한다. 학폭 가해자의 부모가 자식을 비호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아이싸움은 어른싸움을 넘어 어른전쟁이 되었다. 부모가 힘이 없으면 아이가 당한다.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정 변호사의 아들은 아빠에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아들에게 잘못을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않은 대가, 반성할 기회를 주지 않은 대가를 그들 부자는 지금 치르고 있다. 서울대 내에서도 문제의 학폭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그의 무조건적 아들 감싸기는 이 사회의 성공강박증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성공해야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믿음, 성공가도에서 한번 밀려나면 되돌아올 길 없다는 불안감, 그러니 어떤 작은 실수나 실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경직된 사회 분위기이다. 그런 사회에서 내 자식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많은 부모들의 마음이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극성 양육이 2000년 즈음부터 이슈가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 자녀들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세히 챙긴 헬리콥터 부모들이다. 대학에 간 자녀가 수업에 늦지 않도록 아침마다 전화하고, 성적이 낮게 나오면 교수들에게 항의하며,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의대나 법대 진학 시 혹은 취직 후에도 담당자나 상사를 찾아가 자녀 부탁을 하고 봉급 협상을 하는 극성 부모들이 있었다. 그렇게 안전한 막으로 자녀를 꽁꽁 감싸는 것이 정답일까.
사람은 나이만큼 인생을 안다.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정답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답이 다른 경우들이 있다. 자녀교육이 그렇다. 돌아보면 실패한 것 같은 아이들이 나중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기도 하고, 성공한 것 같은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1등, 일류를 놓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탁월한 아이들도 있다.
앞의 전자와 후자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실패할 기회를 가졌느냐는 것. 넘어지고 다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임전무퇴, 기어이 살아남는다. 넘어진 만큼, 실패한 만큼 근성이 생기고 투지는 강해진다. 반면 부모의 보호막 속에서 안전 제일주의로 자라면 정신력을 단련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작은 장애물 앞에서도 쉽게 무너진다. 한국에서 오로지 공부만 하며 법조문 달달 외워 검사가 된 ‘모범’ 아들들은 대부분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마마보이들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는 부모일수록 부모 되기가 어렵다. 너무 많이 주는 게 득보다 실이되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좀 고생하고, 좀 좌절하고, 좀 실패하는 경험들이 인생을 살찌우는 비료가 된다. 부모가 설 자리는 자녀의 뒤, 뒤에서 보살피는 것이다. 답답하고 불안해도, 가슴 아파도 앞서 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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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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