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욱. 그 이름을 제외한다면 국내에선 팝송의 역사를 논할 수가 없다. 그만큼 그의 역할이 시작이고 중심에 있고, 그리고 완성시켰다. 그러던 그가 지난 2월 17일 노환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잠시 그가 처음으로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던 순간을 회상해보자.
1964년 동아 방송의팝송 프로그램 ‘탑튠쏘’에서 청취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담당하던 진행자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톤의 소리였다. 그때 청취자들의 반응은 모두가 한결같이 ‘이건 왜지? 누구의 목소리인가 ?’ 모두가 궁금해하였다. 그 순간 동아방송국 안에는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허리케인이 몰고 올 광풍이 예상되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탑튠쏘의 담당 프로듀서 최동욱이었다.
당시의 방송국 현실은 아나운서 전성시대라 아나운서 아니면 방송 마이크를 잡고 방송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 라디오 방송 사상 최초로 아나운서가 아닌 다른 분야의 직원이 마이크 앞에서 방송한 그 결과에 동아 방송 전 직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프로그램이 예상외로 깔끔히 끝나자 이후부터는 아나운서실에서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 신드롬은 동아 방송에만 끝나지 않았다. 이 모험을 지켜본 타 방송국에서도 상상외로 청취자의 반응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각자 제2의 최동욱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문화방송국은 디쉐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로 활동하던 이종환을 스카우트했고 동양방송국은 성우였던 피세영을 대항마로 뽑았다. 이후 세 방송국은 서로 경쟁하듯 팝송 붐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팝송 삼국지 시대를 열었다.
참신하고 새로운 이 시도가 청취자들의 반응을 얻게 된 요인은 무엇보다도 아나운서들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마치 친구랑 얘기하듯 하는 진행방식이 좋은 평점을 받았고 새로 소개된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잘 풀어가고 친근감과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이전 보다 청취자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귀에 익었던 판에 박힌 아나운서 스타일의 목소리도 아니고 친근감이 듬뿍 담긴 그들의 톤에 청취자는 환호했다. 프로그램 진행방식도 전혀 다른 자유스러운 방식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폭풍 후 그 파괴력은 대단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변화를 일으켰다.
최동욱의 시작은 미국의 최신 팝송 히트곡을 소개하는 탑튠쑈였지만 성공의 절정기를 이룬 곳은 ‘세시의 다이얼’ 프로그램이었다. 라디오 프로에서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가장 낮은 청취율을 가진 시간대이다. 따라서 이 시간대에 편성된 프로그램은 가장 인기 없는 콘텐츠가 방송에 편성된다. 하지만 최동욱은 이 시간대를 활용하여 자기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세시의 다이얼’을 편성 국장에 제의했다. 제안서는 본 편성부는 혁신적인 새로운 시도를 승인한다. 그 이유는 그 시간대는 쓸모없는(?) 없는 시간이라 별 손해 없다는 생각으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이 프로는 청취자가 직접 방송국에 전화하여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요청한다는 것이 요체이다. 단순한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방송국내의 분위기는 이 프로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모두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이 빗나갔다. 이에 자신을 얻은 그는 한걸음 또 나아갔다. 그 당시 자정 이후에는 라디오 방송을 거의 청취하지 않았다. 최동욱은 이 시간대를 이용하여 ‘영시의 다이얼’을 개발하여 보여 주었다. 청취자의 사연과 희망 음악을 엽서로 신청받아 진행하는 것이다. 이 프로 또한 센세이션을 기록했다.
‘세시의 다이얼’은 첫 방송 이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서울시를 포함해 청취가 가능한 경기도 일대에서 한 마디로 난리가 났다. 청취자들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빨리 전화 다이얼을 돌려 접촉이 가능할까 하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경쟁하기 시작했다. 왜 이 프로가 초기부터 라디오 프로 사상 가장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엇보다도 청취자들이 직접 프로에 참여하는 것 때문이다. 청취자는 방송 시스템에 수동적인 매체였지만 ‘세시의 다이얼’은 능동적으로 프로그램 진행에 참여한다는 것 때문에 방송 역사 최고의 화제와 참여율을 기록하여 대성공을 이루었다.
그가 이룬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방송 역사상 최대의 업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두 가지를 짚어본다. 하나는 아나운서 전용문을 타파하고 최초로 비 아나운서 출신으로 방송 마이크 앞에 선 사건이고 두 번째는 ‘탑튠쏘’, ‘세시의 다이얼’ 그리고 ‘영시의 다이얼’ 프로를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이룬 그의 업적이다. 한국 라디오 역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가 떠난 것은 큰 손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없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후세들에게 이어져 방송은 계속되고 있다. 동료로서 또한 후배로서 그의 공헌에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 이별의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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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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