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적 살던 동네에는 고아원이 하나 있었는데 때는 6.25 사변 직후라 전쟁고아들이 사는 곳이었다.
여름밤이면 고아들이 자기 전 이층강당에서 예배 드리면서 부르는 찬송소리가 온 동네에 고요히 퍼져 나갔고 그때 듣던 찬송가 ‘죄짐맡은 우리 구주’ ‘복의 근원 강림하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그때의 고아들이 생각나서다.
그날도 우리 동네 아이들이 고아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식당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서 훔쳐보니 밥사발에 갈색의 무언가를 수북히 쌓아놓고 기도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성인이 되어서야 갈색의 정체가 꽁보리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전쟁중이었으니 식량난이 오죽 하였겠는가? 그해 12월 고아인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성극을 보러 오라고 하여 이층 강당으로 갔는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네들의 정성과 노력을 다한 성스러운 성극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 부산은 전국에서 모여든 백만명의 피난민으로 인하여 포화상태가 되었고 궁여지책으로 거제도를 개방하고 또한 비어 있는 영도섬에 피난민들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영주동의 야트막한 민둥산은 순식간에 피난민 판자촌으로 변하였고 운명의 그날, 판자촌 어디선가 불이 났는데 하필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무시무시한 광풍으로 인하여 그 일대는 불바다가 되었고 불에 타고 있던 씨뻘건 판자뭉치들은 바람을 타고 바로 산아래 부산역으로 쉴새없이 날아 갔다.
부산역 일대는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하였고 불이 활활 타오르며 아수라장이 되어 부산역을 포함 모든 것이 마비 되어 버렸다.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은 냉면과 빈대떡과 개신교를 부산에 가져 왔는데 부산의 번화가 남포동에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원산냉면 등의 간판이 줄을 이었고 국제시장 골목길에는 빈대떡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 당시 유행어는 “났다 하면 불이요, 섰다 하면 교회로다” 였는데 부산 일대에는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질 않았으며 여기저기 교회가 설립 되던 때였다.
개신교 믿는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고 안하무인 격인지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을 야만인 취급하였으며 서양에서 온 종교를 믿는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네들의 첫마디는 언제나 “너 죽으면 천당 갈래? 지옥 갈래?" 였다.
당시 부산에는 하야리아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 그곳 PX를 통해 엄청난 양의 미국 물품들이 암거래를 통해 국제시장의 깡통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그 많은 물류들이 빠져 나올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때 어머니와 함께 이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맛본 그 초콜릿은 평생을 두고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피난민 아이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에서 보내주는 원조물자 속에 레이션박스(RATION BOX)에 담긴 초콜릿, 쿠키, 크래커, 통조림 등이 무상으로 배급되었으므로 먹고 있었고 난생 처음으로 맡아보는 버터 냄새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산, 초량에 있는 초량교회에서는 이북출신 목사님들과 현지 부산의 목사님들이 합동하여 구국 기도회가 있었는데 기도 제목은 이러 하였다.
“하나님, 한국을 살려 주세요! 부산이 함락되면 대한민국은 사라집니다. 부산을 지켜주세요” 였다.
기도를 하는 중에 얼마나 열기가 뜨겁고 절규하였는지 본당에 모인 모든 이가 울지 않는 이가 없었고 어떤 이는 그만 대성통곡을 하였고 어떤 이는 강대상 위에 올라가 방방 뛰면서 기도 하였고 어떤 분은 마루바닥에 온몸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기도 하였고 어떤 목사님은 손으로 마루바닥을 쾅쾅 치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부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죽습니다.” ”부산이 함락 되지 않게 해 주세요 “ 피맺힌 절규의 기도대로 부산은 적군에게 무너지지 않았고 백만명의 피난민을 거둬들인 부산은 무사 하였고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인해 한국의 제 2의 도시로 오늘날까지 건재 하고 있다.
많은 피난민들은 부산의 경제, 산업, 문화, 예술, 교육, 사회의 모든 전반에 많은 기여를 하고 공헌하였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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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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