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기업 판결금 출연 빠져…피해자 단체 반발 회견 예고
▶ 정부, ‘한일관계 미래 명분’ 무게… “日성의 안보이면 일본에도 좋지 않은 선택”
(서울=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6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해법의 주요 내용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 될 전망이다. 사진은 5일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모습.
정부가 한국 주도의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이 문제를 매듭짓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의 해법은 일본과의 법적 입장차라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타협안을 끌어내기 위해 협상과 설득 등을 통해 노력한 결과물로 보인다.
기대했던 수준을 충족하지는 못하지만, 정부는 한일이 공동이익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수 피해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제3자 변제 해법 본격 시동
정부는 6일(이하 한국시간)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기로 하고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다.
골자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 될 것으로 5일 알려졌다.
특히 판결금 지급을 위한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청구권 자금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이 우선 출연하는 방향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제3자가 재원을 만든다 해도 피고 기업이 일부나마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정부도 협상 과정에서 피고 기업의 기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불발된 것이다.
이는 피고 기업이 배상 성격을 띠는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일본의 입장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향후에라도 일본 기업이 재단에 기부할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설득하기 위해 정부가 추가 외교력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교도통신은 한국 정부가 배상금 상당액을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해결책을 공식 발표하면 일본 정부는 뜻이 있는 일본 기업의 재단 기부를 용인할 것이라고 전날 보도했다.
국내 기업들의 재원 출연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또다른 문제다.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16개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재단 측은 사회공헌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 새로운 사과 없이 역대 담화 계승 전망…피해자측 "일본의 완승"
사과와 관련해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방안이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언에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1998년 선언 발표 이후 자민당 주류의 역사인식 후퇴 등 일본 사회가 상당히 우경화돼온 흐름을 고려할 때, 현 기시다 내각이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측 일각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사실 인정' 등이 담긴 사과를 요구해 온 점 등에 비춰보면 피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달 28일 외교부가 피해자 유족들을 단체 면담했을 때도 사죄 필요성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해법 발표 이후 원고들에게 직접 제3자 변제에 따른 판결금 수령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관측된다. 수령에 동의하지 않는 원고들과는 또 다른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 지원단체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6일 정부 해법 발표 이후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기자회견이 개최되며 같은 날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집회도 열 계획이다.
강제징용 소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서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며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방안에 대해서도 "사과가 아닌 걸 사과라고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당위성 공감 얻을까
배상이 아닌 한일간 미래를 위한 사업에는 일본 기업의 참여가 협의돼 왔다.
한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을 통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해 운영하는 방안이 잠정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의 명분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을 들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윤석열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전략적으로 공통분모가 많고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과거사로 협력 필요성이 지나치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보여왔다.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현 정부의 대일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기반으로 한미일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도 컸다. 이는 미국이 강력히 지지하는 바이기도 했다.
이런 한일관계 개선의 당위성이 정부에게 강제징용 문제의 조기 해결을 서두르게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가 변수다.
일본으로서도 한일 협력은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일본 전문가는 최근 연합뉴스에 "일본이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으면 이후 정치 상황에 따라 뒤집힐 수도 있는 불안정한 해결이 된다"며 "일본에도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정책적 지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국의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교류 속에 충분히 녹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이번 해법을) 한일 간에 어떻게 치유의 과정으로 만들어 갈 것이냐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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