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문명의 빛이 침범하지 못한 영화사의 보름달 뜬 밤은, 실로 대낮같이 밝은, 이라 표현할만큼 밝다. 봄꽃을 환히 빛나게 하는 그 달빛은 진정 나눠주고 싶은 아름다움이지만, 아마도 이곳 그 누구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요즘 누가 달에 연연하겠는가. 지난 정월 대보름 법회 때도 보름달 얘기는 아무도 안했다. 대신 달 같이 생긴 스파이 벌룬 얘기를 했다. 저 위에 해븐이 있다고, 극락이, 옥황상제가 있다고 믿었던 그 하늘은 아주 오래전에 잃었고, 이젠 순수한 달도, 별도, 하늘도 다 잃었다. 어쩌랴. 그들에겐 블랙홀에 은하단 사진까지, 이제 저 하늘은 예전의 그 하늘이 아닌 것이다. 하늘 저 속이 속속 벍혀질 수록, 이 중은 그 놀라운 업적보다, 그런 일을 위해 떠돌다 사라지는 우주 쓰레기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바다로 추락한, 일명 대형 스파이 풍선 데브리스를 보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격추되기 전, 허공의 그 희고 둥근 벌룬을 티비 화면에서 처음 봤을 땐, 그것이 달인줄 알았다. 누가 알랴.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 세상에 명명된 이름들 모두가 그렇듯, 그들이, 그게 누구든, 권력이 그게 그거라면 그거인 것이다. 최근에 나사가 보여준 그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은 은하단 사진도 실은 나사가 빛의 굴절을 살려 만든 사진일 뿐, 실제 별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아무튼, 텅 비어서 허공이라 불리던 하늘이, 이제 너무 복잡해졌다. 밤 하늘엔 별보다 빛나는 인공위성과 마이크로 카메라 들이 있으며, 낮의 하늘엔 더 많은 날아오르는 것들이 있다. 이제 비행기기에 이어, 미확인 물체... 스파이 벌룬 까지. 빼앗긴 하늘에도 봄은 올테고, 풍선처럼 점점 더 부풀어오르는 세상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보며 때로 성가신, 이 중의 심정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는 인연대로 흘러가는 세태를, 애초 이해하려는 의도 자체가 이 중에겐 없다. 그 세상을 알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더 이상할 뿐이다. 이를테면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는 공룡의 그 이상한 그린색도, 실은 과학자들이 대충 그럴 것이라 추정하여 입힌 색깔일 뿐,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여기서 공룡의 진짜 몸 색깔이 무엇이냐는 중요치 않다. 권력으로 명명된 것을 그대로 학습하는 것이 교육이고, 그것을 우리는 안다, 라고 한다. 그러나 푸른 신호등의 '푸른'이 어느날 '초록' 으로 바뀐 거 처럼, 진실이던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도 한다. 우리가 안다는 게 이런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고, 얼마나 모르는 세상을 살고 있고,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지, 그리하여 '내 말은 다 거짓말이다, 속지말라.' 하신 큰 스님들의 말씀이 얼마나 간절한 자비인지, 삶에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그런' 것임을 알면, 삶이 많이 편안해진다. 욕심 났던 세상만사에 웃음 나고, 안달복달 하지 않게 된다. 속세의 삶이란 게 마치 풍선처럼, 세풍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날아 오르다가, 수명이 다하면 터지고, 때로 원하지 않는 이상한 곳에 도달하기도 하고, 곤두박질치기도 하며, 초록이다, 하면 초록이 되고, 명명된 이름을 진실로 알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의 많은 이가 그 쪽을 좋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많은 이가 하늘 속 별들의 길고 복잡한 이름까지 알게된 세상이 되었지만, 당신이 문득 이름에 속고 사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새로이 명명된 이름이 많아지고 달라진다고 해서, 그 하늘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걸 발견 할 수 있다면, 깨닫게 될 것이다. 변한 건 결국 자신이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긴 숫자 나열 같은, 암호 같은, 새로운 이름들은 지금도 매일 생겨나고 있다. 그것을 학습해야 살기 편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 편해졌는가. 당신이 사는 세상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저 허풍선 같은 세상만사에 속지 않고, 오늘을 고요히 살 수 있게 된다. 있지만 없는, 저 허공이 된다. 그래서 복잡한 세상일수록, 비우는 공부가 중요하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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