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토의 동진…한국의 과제는
▶ 중·러, 미 중심 기존 국제질서 타파…공급망 등 새 가치 중심으로 편갈라, 우호적 국가간 블록화·진영화 심화
나토, 중위협 맞서 인태로 대응 확장…한도 북·한반도 위주 패러다임 벗고 인태 국가와 연대·외교 중심축 전환
최근 일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표부 신설을 결정했다. 일본은 올해 안에 독립된 나토 대표부를 설치하는 한편 나토의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또한 일본은 지난달 발표한 새 방위 전략을 통해 2027회계연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인상해 나토 회원국 수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바 있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나토 대표부 신설을 완료했다. 이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이후 취해진 조치다. 한일의 이 같은 움직임은 나토가 인도태평양으로 눈을 돌리는 최근의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유럽은 이미 그 전부터 인도태평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럽이 인도태평양으로 옴으로써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국제정치의 중심 무대가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중심축의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국제 질서의 성격 변화와 연관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국제 질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건설된 체제다.
미국 주도로 창설된 유엔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 제도와 레짐이 근간이 되는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그 본질이다. 이러한 질서의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드라이버는 중국의 부상, 곧 힘의 변화라는 전통 지정학적 요인 외에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깊어진 신냉전 추세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를 타파해 현상의 변개를 추구하는 대표적 현상 변경 세력이라 할 수 있다. 기존 국제 제도와 레짐의 기능 부전, 레짐의 붕괴 현상 등 전체적으로 국제 체제의 파편화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인권, 신기술, 우호적 공급망 등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무대(인도태평양)에서 새로운 편 가르기가 전개되는 것이 최근 국제 정세의 주요 추세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지구적으로 확산하면서 지금은 세계 모든 국가들이 각자도생, 무한경쟁의 판으로 몰리는 대경쟁·대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경제를 포함해 모든 이슈들이 안보화(securitization)되는 추세 속에서 미중은 각자 우호적인 세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기선이 발생하고 미중 모두 우호적 국가들을 자국 중심의 임무지향형 연대로 결집시킴으로써 블록화·진영화가 심화되고 있다.
유럽이 인도태평양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서 변화를 전제로 한다. 2022년 6월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는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와 안보의 핵심 기초가 도전받는 전략적 현실 속에서 유사 입장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에 주목한 나토 회원국들은 한국을 포함해 아태 지역 파트너 국가 4개국(AP4)을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초청했다.
이 정상회의에서 12년 만에 개정된 나토의 신전략 개념(NATO 2022 Strategic Concept)은 러시아가 유럽·대서양 지역의 안보와 평화에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위협을 제기함을 적시하고 중국은 강압적 정책으로 유럽의 이익과 안보·가치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국제정치의 전통 안보 분야는 물론 우주·사이버·해양 안보 등에서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나토의 전략 개념은 동맹 체제의 핵심 문서로, 나토의 가치와 목적을 재확인하고 안보 환경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제공한다. 또한 미래의 정치·군사적 사태 전개에 대응해 나토의 전략을 조정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신전략 개념은 기존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는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요동치는 국제 질서를 배경으로 나토의 관심과 대응의 범위를 유럽을 넘어 역외인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뉴질랜드·호주 등 아태 지역 파트너 국가들이 이 회의에 초청된 것은 나토가 이들과 함께 대중국 전선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시사한 것이다. 결국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에 초점을 맞췄던 나토의 성격에 중국의 위협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최근 국제 정세의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도 미국과의 가치 동맹 강화에 이어 나토와의 협력 강화로 안보 지형 변화에 추가적인 안전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강조해온 자유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 동맹 및 다자 외교에 이어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를 통해 지역 외교가 포함된 대외 정책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에 부합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우리 최초의 포괄적 지역 협력 전략으로, 우리의 가치와 국익에 부합하는 역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 의지 및 협력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우리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대외 전략의 활동 공간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동안 남북 관계에 매몰된 외교에서 벗어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파트너들과의 연대를 심화해 우리 외교의 동력을 강화하고 지평을 확대한 것으로 정부가 외교의 중심축을 한반도 문제에서 인도태평양이라는 공간으로 전환함을 시사한다. 최근에는 미중 간 전략 경쟁 고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강대국 경쟁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다시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도 한반도 문제에만 주력하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인도태평양 지역을 무대로 가치를 함께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나토와의 협력은 바로 그러한 연대의 핵심 중 하나다.
나토와의 협력을 확대하되 주의할 부분도 있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집단 안보를 지향하는 다자 군사동맹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신냉전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명백한 군사적 공조에는 신중해야 한다. 나토와의 가치 연대 속에는 군사 협력도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에 군사용 살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과 위상에는 어떤 득실이 있을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외교적 태세가 모호성을 벗어나 가치 외교가 뚜렷해질수록 중국이나 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로부터의 압박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의 외교적 선택에 따르는 책임과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반중·반러 대열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정체성과 국익 우선순위에 따라 가치 외교 옵션을 선택하되 그런 선택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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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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