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북소리와 함께 아프리카 초원의 지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원숭이주술사가 아프리카 줄루족의 노래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를 목청껏 부르는 순간, 관객들은 곧바로 신비로운 동물의 왕국으로 초대된다.
사자왕 무파사가 바위에 올라서 아기사자 심바를 들어 올리자 얼룩말 기린 영양 가젤 치타 코뿔소… 동물들이 뛰놀며 왕자의 탄생을 축하한다. 객석 통로를 따라 덤벙덤벙 걸어오는 거대한 코끼리, 그 뒤를 이어 새들도 팔랑팔랑 기뻐하며 평화로운 야생의 세계로 날아든다.
뮤지컬 ‘라이온 킹’(Lion King)이 다시 왔다. 오래전 LA에 처음 왔을 때 너무나 재미있게 본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그게 무려 23년 전의 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199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역사상 최대흥행을 기록한 ‘라이온 킹’은 LA에서 2000년 9월부터 2003년 1월까지 952회의 장기공연을 가졌었다. 당시 할리웃의 팬테이지스 극장(Pantages Theatre)은 이 뮤지컬을 유치하기 위해 오래된 극장 내부를 ‘라이온 킹’ 공연에 최적화되도록 로비에서부터 무대와 객석, 인테리어, 음향, 조명까지 완전히 리모델링했다.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지나치게 번쩍거리는 느낌은 살짝 있지만 ‘라이온 킹’ 맞춤극장이라 해도 좋을 팬테이지스 씨어터에서 이번 두 번째 공연도 아낌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 재개된 북미투어의 일환으로 찾아온 이 공연은 2월2일 시작돼 오는 3월26일까지 두달 남짓 계속된다.
디즈니의 가장 성공적인 만화영화요,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라이온 킹’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파사 왕의 자리를 노리는 사악한 동생 스카, 그의 음모에 빠져 무파사는 죽고 어린 심바는 멀리 다른 땅으로 쫓겨난다. 왕의 후계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채 멧돼지 품바, 미어캣 티몬과 함께 즐겁게 살며 성장하는 심바. 그러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암사자 날라를 만나게 되고, 원숭이주술사의 깨우침으로 자신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은 그는 황폐해진 왕국으로 돌아가 스카를 심판하고 마침내 왕이 된다.
마지막 씬은 심바와 날라가 바위에 올라 새로 태어난 아기사자를 들어 올리는 장면. 바로 ‘서클 오브 라이프’, 생명의 순환이라는 이 작품의 모티브가 담긴 시작과 끝이 감동적이다.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 너무도 유명해진 음악을 오랜만에 라이브 연주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엘튼 존이 작곡하고 팀 라이스가 작사한 6곡의 노래와 한스 지머, 레보 M 등 5명이 함께 쓴 음악은 아카데미상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휩쓸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광활함을 보여주며 다채롭게 변화하는 세트도 웅장하고, 700여개 조명장치들이 재현해내는 사바나의 새벽, 한낮의 태양, 선홍빛 노을과 반짝이는 별빛까지 대자연의 색감이 화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라이온 킹’ 뮤지컬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기발하고 재치있는 동물 분장이다. 처음 제작단계에서는 등장인물이 모두 동물인 캐릭터를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회의와 우려가 있었지만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가면극과 인형극에서 차용한 마스크와 퍼펫을 사용하여 경이롭고 독창적인 동물 분장을 창조해냄으로써 여성 최초의 토니상 연출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배우들에게 억지로 동물 분장을 시키거나 뒤집어씌우지 않고 각 동물의 특성을 살린 마스크와 퍼펫 의상만으로 인간배우가 동물의 행동과 표정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함으로써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공연무대를 창조해냈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은 25종, 퍼펫 수는 무려 235개에 달한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둔 뮤지컬 ‘라이온 킹’은 1998년 토니상에서 11개 부문에 후보지명 되어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안무상, 무대 디자인상, 의상상, 조명상의 6개 부문 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와 그래미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를 비롯한 주요 시상식에서 70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이온 킹’은 지금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9,000회 넘게 장기 공연되고 있다. 세계 20여개국에서 1억1,200만명 이상이 관람했으며, 총 62억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두어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1위를 기록했다.
이번 LA 공연에서는 어린 심바 역의 제일렌 린든 헌터가 제일 잘했다. 1막의 주인공인 작은 심바가 어찌나 팔딱거리며 연기도 춤도 노래도 잘하던지 이 꼬마의 활약에 다른 성인 출연자들이 밀릴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어린 심바 역은 두 소년배우가 번갈아 소화하므로 출연 일을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도 좋겠다. 하긴 다른 배우도 잘하겠지만.
오랜만에 쉽고 즐거운 공연을 보니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흐뭇하다. 중년에서 노년이 된 이 관객에게도 ‘라이온 킹’은 처음과 다름없이 여전히 신나고 흥분되고 재미있다. 극장에는 아이들이 가득했고, 관객들은 유명한 곡이나 동물이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티켓(168~756달러)이 좀 비싸기는 하지만 자녀, 손주들과 함께 관람하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2,700석 극장이 입추의 여지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실내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제 정말 ‘정상’으로 돌아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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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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