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유부단” 주변국서 비판 쏟아져… “유럽 맹주로서 책임 다해야” 주문도
유럽 여러 나라가 자국의 주력 전차 레오파드2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제조국인 독일이 승인을 주저하며 탱크 지원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독일은 혹시 모를 확전 우려 속에 "미국이 먼저 에이브럼스 탱크를 지원하라"고 미국쪽으로 공을 넘기려 하지만, 독일을 향한 서방의 압박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 CNN방송,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21일 보도에서 독일제 레오파드2 탱크 지원과 관련한 주변 상황을 집중 분석했다.
1979년 처음 선보인 레오파드2는 사거리만 50㎞에 이르며, 최고 속도는 시속 68㎞다. 주포는 120㎜ 활강총포 방식이며, 주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공축 경기관총 2대가 함께 설치돼있다.
이 탱크는 독일군은 물론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등 10여개국에서 주력 전차로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코소보,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 배치돼 활약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중화기가 필요하다며 레오파드2 탱크를 꼭 집어 줄기차게 지원을 요청해왔다.
일단 구소련 시절 제작된 노후한 전차만 보유하고 있던 우크라이나로서는 신형 주력전차 T-90를 앞세운 러시아군에 반격을 가하고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현대화한 전차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접근성 등을 두루 고려하면 폴란드 등 인접 국가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레오파드2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 탱크 300대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0대만 있어도 전쟁의 균형점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폴란드와 핀란드, 덴마크가 자국이 보유한 레오파드2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히며 독일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탱크를 제3국에 수출하려면 제조국인 독일이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마저 레오파드2와 비슷한 체급인 주력 챌린저2 탱크 지원을 약속하며 독일을 향한 압박은 더 커졌다.
하지만, 지난 20일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서 열린 서방 50여개국의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 그룹'(UDCG) 회의에서 레오파드2 지원 관련 합의는 일단 불발됐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회의 후 "레오파드2 전차의 우크라이나 공급에 대한 참가국간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모든 찬반의견이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원 입장을 놓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어왔다며 "독일은 무기 공급과 관련, 일방적인 움직임 보다는 다자적인 접근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독일은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배한 이후 '반군국주의' 전통을 붙들고 씨름해왔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장갑차 등 군사장비를 대거 지원하면서도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탱크 등 무기 공급에 주춤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CNN에 따르면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규모에 있어 미국과 영국에 이은 3위다.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도 주력 전차 에이브럼스 M1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에이브럼스는 연료 소모량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장에 어울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내에는 여전히 탱크 지원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반대론자들은 탱크 지원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개입도를 높여 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지만, 찬성론자들은 민간 기반시설을 공격하며 핵위협으로 갈등을 키우는 장본인이 러시아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독일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장고를 이어가자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UDCG 회의 다음날인 21일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에서 "오늘의 우유부단이 더 많은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연되는 하루하루가 우크라이나인의 죽음"이라며 "더 빨리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외무장관은 공동성명을 내고 "독일이 레오파드 탱크를 지금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것을 요청한다"며 "독일은 유럽의 맹주로서 더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을 향한 유럽 국가의 공개 비판은 드문 일이라고 AFP는 평가했다.
나토의 한 고위 외교관은 독일의 머뭇거림이 장기적으로 동맹국들에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낼 것이라면서 "겹겹이 쌓인 신뢰가 서서히 부식되어가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고 CNN이 전했다.
실제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최근 독일을 향해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독일은 우리 중에 가장 소극적인 국가"라고 비꼬았다. 폴란드는 독일과 함께 나토 회원국이지만. 2차 세계대전 피해로 독일에 감정이 좋지 않다.
한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전에서 패배하는 것은 독일 이익에도 부합하는 만큼 탱크를 보내기 바란다"며 "바이든 행정부도 탱크를 보내 다른 이들이 우리 선례를 따를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양측이 동시에 탱크를 지원하자는 제안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탱크 지원 움직임을 내심 주시하는 모습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0일 나토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방침을 두고 "전장에서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탱크 지원 가능성의 중요성이 과장돼선 안 된다"며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다는 망상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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