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FM 방송 등에서는 신청곡 따위를 근거로 그 해의 인기곡 순위를 매기곤 한다.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바흐 등 위대한 작곡가의 이름은 모두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에는 왜 이 곡이 꼴찌야? 하게 되는 곡도 있고, 왜 이 곡이 인기야? 하게 되는 곡도 있다. 한국과 미국 등의 인기 순위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은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러시아적 서정미 넘치는 곡들이 인기 있고 이곳은 의외로 베토벤이나 바흐 등 독일 음악가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특히 독일 음악은 베토벤 빼면 시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합창 교향곡’의 인기가 그렇게 높은 줄 몰랐는데 이곳에서는 늘 베토벤의 ‘합창’이 ‘톱 3’의 위치를 놓치는 법이 별로 없다. 슈베르트의 경우 한국에서는 ‘미완성 교향곡’을 많이 듣고 이곳에서는 슈베르트의 9번 ‘The Great 교향곡’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먼지 낀 LP 꽂이에서 슈베르트의 작품을 찾아보니 선반 한구석에 슈베르트의 ‘The Great 교향곡’이 눈에 들어왔다. 소장하고만 있었지 안 들어본지 어언 20여 년이 넘은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참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우연히 FM 방송 등에서 들려올 때가 아니면 거의 마음 먹고 들어본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슈베르트는 독일 낭만파 음악가 중에서 그 위치가 마치 여러 형제 중 둘째와 같은 존재였다. 베토벤과 슈만, 브람스 등 선 후배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존재였다고나 할까. 슈베르트는 남긴 가곡만 해도 6백여 곡이 넘으며 즉흥곡이나 피아노 트리오 같은 실내악곡은 물론 9곡이나 되는 교향곡도 남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슈베르트는 살아생전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더욱 유명하게 된, 즉 죽어서 산 자였다. 슈베르트가 살아생전 베토벤을 만난 적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슈베르트는 같은 비인에 살았던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쑥스러움으로 인해 그 주위를 서성이기만 했지,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사망한 이듬해에 31세라는 나이로 그 역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슈베르트의 작품을 본 베토벤은 이 청년이 곧 세상을 크게 빛낼 것이라며 슈베르트와의 늦은 조우를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두 사람은 베토벤이 죽기 직전 서로 상봉했다고 전해지기도 함)
‘합창 교향곡’의 위대함은 동서고금 최고로 치고 있는데 유네스코도 2002년 ‘합창’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베토벤의 친필 악보를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서 베토벤이 명예를 걸고 ‘합창 교향곡’을 완성한 경우라면 슈베르트의 경우는 합창이라는 무대에 찬조 출연하듯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교향곡 9번을 작곡했으며 (물론 발표될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 한 채) 여러 건강상의 이유로 작곡한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리에겐 ‘아베마리아’, ‘겨울 나그네’ 등으로 유명할 뿐이지만 슈베르트도 교향곡을 비롯해 형식미 넘치는 실내악곡을 많이 남긴 독일 낭만파의 무시 못 할 존재였다. 어쩌면 베토벤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독일 낭만파의 형님역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음악적 역량이 뛰어났고 선율적 감각도 천재적이었다. 그러나 베토벤 등의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슈베르트의 위치는 매우 애매한 것이었으며 결국 무명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슈베르트는 오히려 슈만과 브람스 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된다. 최고가 아니면서도 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둘째는 많지 않다. 슈베르트는 아마도 베토벤 사후 백 년을 더 이어가게 되는 비인 시대를 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슈베르트 역시 ‘The Great 교향곡’을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예감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비슷한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번호의 9번 교향곡은 탄생했으며 듣는 이에게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남게 되는데 슈베르트 사후 10년 뒤 빛을 보게 되는 ‘The Great 교향곡’에 대한 슈만의 절절한 문구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곤 한다. ‘The Great’이라는 제목이 붙게 된 이유는 작품의 웅혼함, 50여분이 넘는 긴 길이 때문이지만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낭만적인 격정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작곡된 시기는 1828 년 3월, 실제로 연주된 것은 1838년 라히프찌히에서였다고 한다.
해와 달이 겹치는 순간을 우리는 일식(eclipse)이라고 한다. 음악사에 베토벤이라는 태양에 Eclipse 된 사람은 바로 슈베르트였다. 낭만적인 예술가였지만 늘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던 비인의 음악가…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후계자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대중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특히 수많은 미발표작품 중에서 교향곡을 무려 9 작품이나 남긴 것은 수수께끼였다. 그러므로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베토벤을 연상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쓸쓸한 방 안에서 홀로 공상하며, 어쩌면 발표되지도 못 할 작품을 누군가에게… 특히 베토벤이 알아줄 것을 기대하며 한 소절 한 소절 오선지에 옮겼을 슈베르트에게 베토벤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The Great 교향곡’은 베토벤에게 헌정하는 듯한 두 작곡가의 Eclips… 순박한 감동이 함께 몰려온다. ‘The Great’…. 과연 누구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였을까? 슈베르트와 베토벤… ‘The Great 교향곡’이야말로 어쩌면 해와 달의 일식… 두 위대한 작곡가가 일으키는 신비한 광채일런지도 모른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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