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종이 신문은 우리 모두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다. 젊은 청년의 숨 가쁘고 낭랑한 목소리로 “신문요~"하며 담 너머로 들려오는 상쾌한 외침은 이른 아침을 여는 기상 이상의 힘찬 메아리였다.
신문을 보지 않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읽기 편한 가로쓰기도 아닌 세로쓰기였고 한문이 한글보다 더 많을 때도 있었으나 글을 읽을 수 있는 평범한 시민에서부터 지체가 높으신 지식인까지 그들의 눈과 귀는 오직 신문을 통하는 길 하나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따뜻한 아랫목에 펼쳐진 신문을 두꺼운 안경을 끼시고 한 자 한 자 자세히 들여다보시는 모습이 연상된다. 안경 너머로 막내딸의 하교 모습을 넌지시 보시며 간식거리를 준비하시기 전까지 엄마의 시선은 신문에 고정돼 있곤 했다. 그랬던 엄마의 모습이 이제는 고스란히 지금 내 모습이 되었다.
신문의 1면은 당연히 미국 내 핫이슈로 장식된다. 많은 면이 광고로 도배되기도 하지만 타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기재해주어 언어가 미숙한 많은 한인 1세대들의 속풀이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타국에 살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꼭 맞는 말이다. 한국 뉴스에 더욱 열을 올리고 한국의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고 한국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 슬픈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래서 아마도 한국보다 타국의 한국 신문 배달이 더욱 간절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른 시대에 활자를 한 자 한자 만들어 잉크를 바르고 종이인쇄를 해서 다음날 사람이 집집마다 배달을 해야 하는 신문을 요즘 젊은이들이 볼 때는 나무늘보처럼 한없이 느린 구시대적 단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느리게 진행되어 만들어진 수정이 불가능한 신문은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생명인 언론으로서의 대변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온갖 정보를 빠르게 입력하고 빠르게 수정하고 또한 빠르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인터넷 뉴스가 종이신문을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인터넷 뉴스의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골라보는 인터넷 뉴스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 전 세계인이 올리는 수만 개의 토픽에서 진품과 가품의 교묘한 차이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가짜 뉴스인지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종교에 홀릭되듯 무섭고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기 쉽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는 개인적인 올바른 지적 시선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버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핸드폰의 보급에 있다. 1인 1대의 핸드폰 시대가 열리면서 화면에 나타난 뉴스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몇천 년 동안 지식과 정보의 습득 과정이 오로지 종이로만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린 모양이다. 유명한 외계인 ET처럼 검지 손가락 하나만 길어질까 염려가 될 만큼 한 번의 클릭으로 온 세상의 뉴스를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한마디로 내 손안에 세상이 들어와 버린 셈이다.
언어가 아닌 인터넷 사용의 여부가 문맹의 높낮이를 대신하게 되었고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지구상에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이 되어버렸으니 나를 비롯한 나의 윗세대들의 아픔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고 이는 세대 간의 소외계층을 한층 더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과학이 후퇴하는 법은 절대 없기에 아득한 후손들은 종이로 된 신문을 신기한 듯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의 유산인 팔만대장경 같은 유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레트로를 그리워하는 우리네가 침을 발라가며 잉크 묻은 손으로 신문을 넘기는 그런 모습이 아무리 ‘옛스럽다’ 부르짖는다 한들 지나간 영광은 돌아오지 않으리라.
내 추억의 소환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아직 인쇄가 다 마르지 않아 행여나 활자가 뭉개질까 염려스러운 마음과 신문 특유의 휘발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신문을 감싼 비닐을 벗긴다. '신문요~'라며 소리치는 사람은 없지만 얼어붙은 풀들 사이로 몸을 숨긴 오늘 자 신문의 운명은 내 손바닥에 올려진다. 오늘은 한껏 게을러지고 싶은 깊은 겨울이다. 어서 들어가 따끈한 차 한잔 놓고 한 자 한 자 그림과 활자를 맞추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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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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