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구약에 나오는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의 하나다. ‘사무엘 상’ 17장을 보면 어떻게 어린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 한 방으로 거꾸러뜨렸는지가 생생히 적혀 있다.
블레셋 다섯개 왕국 중 가장 큰 가드 출신인 골리앗은 “청동 투구를 쓰고 비늘 갑옷을 입었으며 그 갑옷의 무게가 청동 5,000 세겔(약 55kg)이고 청동 각반을 차고 어깨 사이에 청동 단창을 메었으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600 세겔(약 6.6kg)”이었다고 돼 있다.
한 때 블레셋족이 거주했던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유골과 유물이 발견돼 성서학자들을 흥분시킨 적이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다윗이 활동한 기원전 11세기가 아니라 ‘사무엘 상’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7세기 것으로 판명됐다. 다윗의 전투 장면은 현장 목격담이 아니라 후세 사가들이 지어낸 것이란 의심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기는 한 것일까. 성서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는 ‘사무엘 하’ 21장에 적혀 있다. 여기서 다윗은 블레셋 거인의 자식 4명 중 하나인 이스비브놉과 싸우다 죽을 뻔 하지만 부하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고 부하들은 거인의 4 자식을 하나씩 모두 죽이는 것으로 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들레헴 출신 야레-오르김(정확히는 야레, 오르김은 ‘베틀 채’의 ‘채’라는 뜻)의 아들 엘하난이 거인의 아들 중 하나인 가드 출신 골리앗을 죽였는데 그의 창자루는 베틀 채와 같았다”는 부분이다. 아무리 골리앗이라 한들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윗과 엘하난 둘 중 한 사람만 골리앗을 죽였다고 봐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면은 화려하게 수십 줄에 걸쳐서 묘사된 반면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것은 단 한 문장뿐이다. 이럴 경우 대체로 한 문장쪽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진실은 많은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유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업적에 상처를 입힐 이런 문장이 성경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한국어나 영어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문장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영어 성경에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형제’를, 한국 성경에는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을 마음대로 고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형제’와 ‘아우 라흐미’는 다른 글자체로 쓰여 있다. 히브리 원전에는 모두 없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형제’와 ‘아우 라흐미’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다윗과 엘하난에 관한 상충되는 기록은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한 때는 엘하난이 다윗의 아명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엘하난은 야레의 아들이고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그러려면 야레도 이새의 아명이어야 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무엘’보다 수백년 후 쓰여진 ‘역대’의 방법이다. 유대의 역사서로 성경의 일부인 ‘역대 상’ 20장에는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았다”고 적혀 있다. 영어와 한국어 성경은 이 기록을 원용해 ‘사무엘’ 원본을 수정한 것이다.
다윗에 관한 불리한 기록은 모두 삭제한 역사서인 ‘역대’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엘하난이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다는 것만 기록하고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베들레헴’은 히브리 말로 ‘빵의 집’을 뜻하고 ‘라흐미’는 ‘베들레헴 사람’이란 뜻인데 블레셋 사람이 이런 이름을 가졌을 리가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기록은 성경에 남게 된 것일까. 다윗은 한때 아둘람 동굴에서 사회 불만 세력을 모아 인근 유지들의 금품을 뜯던 산적 두목이자 골리앗의 고향 가드에서 블레셋의 용병 노릇을 하던 인물이었다. 성경도 이를 모두 인정하고 있고 특히 가드 왕의 아들 아기시는 다윗에게 땅을 주고 그는 이제 영원히 자신의 종이 됐다고 믿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면 가드 왕이 과연 자신의 장수를 살해한 인물을 따뜻이 품어 주었을까.
이런 다윗이 훗날 유대의 왕이 되자 그가 어려서부터 특출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줄 일화가 필요했고 다윗의 부하이자 같은 베들레헴 출신인 엘하난의 무공을 빌려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것이 이 문제를 연구한 다수 성서학자들의 생각이다.
감동적인 신화와 건조한 사실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대부분의 인간은 전자를 택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거인 골리앗을 무찌른 소년 다윗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계속 진실로 남을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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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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