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달 둘째 일요일(12월11일). 거대한 지구가 조그만 축구공 속에 빠져버린 듯 이리 날고 저리 튀는 공의 향방 따라 지구촌이 들썩들썩 환희와 탄식의 승부열전 끝에 2022카타르월드컵 최종 4강을 가려놓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이날, 북가주에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그냥 비가 아니었다. 단비였다.
우기가 되어 내리는 비에 단비 따로 있으랴만, 지난 몇년간 우기가 왔는지 갔는지 모르게 어쩌다 한번 감질나게 ‘성의표시 겨울비’나 뿌리는둥 마는둥 했으니, 하여 산하의 목은 마를 대로 마르고 대지의 입술은 탈 대로 탔으니, 무려 사나흘간 모처럼 인색하지 않게, 허공 가득 보배로운 비가 오지게 내렸으니(雨寶益生 滿虛空/우보익생 만허공) 산하대지삼라만상 무정중생(山河大地森羅萬象 無情衆生)과 인축내지준동함령 유정중생(人畜乃至蠢動含靈 有情衆生)이 어찌 춤추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바로 그날 저녁, 북가주 한인불교마을의 소리없는 큰일꾼 자성화 보살 자택에서도 정 듬뿍 웃음 가득 파티가 열렸다. 참선모임 수선회가 중심이 돼 준비한 이 모임에는 북가주 한인불교 대소사에서 보시든 봉사든 저마다 일당백 일꾼역할을 마다 않는 광명화 보살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그뿐 아니었다. 한국으로 중국으로 출장중인 수선회 초대회장 유인 거사, 북가주에 살지만 사정상 참가하지 못한 ‘수선회 지킴이’ 여경 보살과 제니 보살 등은 카톡을 통해 몸 대신 마음을 파티장으로 보내거나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카톡방에 새겨놓았다. 사우디에서 근무중인 미타향 보살도 함께하고픈 마음을 카톡에 듬뿍 실어 산호세로 전송했다. 수선회 회장 달오 거사는 이날 모임에 함께하기 위해 남가주-산호세-남가주 빗길 왕복운전을 강행했다.
그러면서도, 미진은 이름이 미진일 뿐이요 세계는 이름이 세계일 뿐이므로 이름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별다른 이름이 붙지 않은 이날 모임의 꽃은 단연 한혜경 보살이었다. 북가주 한인불교의 대모로 불리는 한 보살은 수년 전부터 주로 조지아주 아들네에 거주하지만 북가주 한인불교 대소사에 여전히 깊은 관심을 보이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수선회의 경우 아직까지 이사회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한 보살은 지난해 봄 여성불자회 출범준비를 전후해서도 그렇고 이번 모임이 끝난 뒤에도 그렇고 직접 카톡이나 이메일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90대 젊은 불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 가을 비교적 긴 일정으로 북가주에 오자 수선회를 중심으로 “한 보살과 함께” “한 보살을 모시고” 뜻깊은 연말연시를 보내자는 의견이 나온 끝에 이번 모임이 성사된 것이다. 특히 달오 거사는 지난 10월19일 수선회 카톡방에 “수선회의 영원한 어머님”이란 제목으로 한 보살의 근황을 알리며 군불을 지폈다. 이날 모임 참가자들은 한 보살의 그간 솔선수범에 감사하고 백세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케익을 준비하고 생일축하노래 가사를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건강하세요.”로 바꿔부르며 분위기를 돋웠다.
박문정 보살은 모임 뒤 카톡방에다 “…한혜경 보살님을 뵈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장수의 비법을 여쭤봤는데, 다른 사람(또한 자신도)을 있는 그대로 사랑만 하라고 하신 말씀이……마음청소하며 살아야겠다는 발심을 하며 집에 왔습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자성화 보살과 지은경 보살은 한 보살에게는 물론 행사장면 비디오편집을 맡기로 한 오승진 거사 등 참가자들 모두에게도 심심한 감사인사를 올렸다. 한국을 거쳐 중국에 간 유인 거사는 “한 보살님 건강하셔서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그 다음에도 오래오래 저희랑 함께 하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보월화 보살은 “한혜경 어머님의 단아한 모습 건강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라며 “(평등성 보살 등) 멀리서 오신 불자님들, 멋진 장소를 내어주신 자성화 보살님”에 감사한 뒤 “우리 불자님들의 고운 인연 오래도록 함께 이어가기를 기원”했다.
부부동반 참가한 세인 거사의 카톡방 쪽지글에는 달오 거사의 빗길운전을 염려하면서 언제일지 모를 다음 모임을 위해 거사의 자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과 한 보살에 대한 존경심을 가득 담았다. “비도 많이 오는 날씨에 같은 날 LA로 돌아 가신다는 말을 지금 듣고 놀랐습니다 수선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어느 때나 이런 경우가 있으시면 저의 집에서 자리를 내드리겠습니다. 한 보살님은 저의 큰누님 같으신 분입니다. 오래도록 뵙겠습니다. 존경합니다.”
버지니아주 학산 거사는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만 하라 - 한혜경 보살님의 일평생의 인생관이 녹아있는 말씀에 공감하며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IT전문가 황용현 거사는 “어제 같이 자리를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어요. 자성화 보살님, 지은경 보살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에서 행복함과 충만함이 느껴집니다. 한 보살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수선회와 계속계속 같이하세요”라는 소망을 달아놓았다.
모임이 끝난 뒤 한혜경 보살은 카톡방에 “너무너무 감격스러워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밖에 할말이……참으로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또박또박 감사의 글을 남겼다.
이제야 공개하는 한 보살 관련 비화 한토막. 기자는 지난해 9월 본보 불교면 15주년 기념 특집으로 한 보살 이야기를 싣기 위해 이메일 인터뷰 등을 조심스레 청했다. 그날인가 다음날인가 한 보살로부터 답신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열어본 기자는 일순 머리끝이 쭈뼛했다. 사신 내용을 일일이 밝히는 것은 한 보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려니와 기자를 포함한 다수 불자들에게 심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할 것이 뻔하기에 이쯤에서 닫는다. 다만 그것은 한 보살의 인품과 인생관이 절절이 묻어나는, 매우 정중하고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사양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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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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