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도입 이후 18년만에 첫 발동…시멘트 운수종사자 2천500명 대상
▶ 국토부, 76개팀 투입 현장조사 착수…명령서 수령거부 속출할 듯
정부 손배소송 검토, 교통공사 등 연쇄파업 예고…노정 ‘강대강’ 극한 대치
(제주=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엿새째인 29일 정부가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자 이날 오후 제주시 제주항 6부두 앞 도로에서 화물연대 제주지부 관계자들이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29일(이하 한국시간)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응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즉각적인 집행에 돌입했다.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제도 도입 이후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일단 시멘트 운수 종사자 2천500여명이 명령 대상이다. 관련 운수사는 201곳이다.
이에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과 취소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여기에 서울교통공사 노조(30일)와 전국철도노조(내달 2일)도 이번 주 파업을 예고하면서 노정의 '강 대 강'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 윤 대통령, 직접 국무회의 주재해 업무개시명령 발동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해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심의·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총파업 이후 시멘트 출고량이 평소보다 90∼95% 감소했고, 이어진 레미콘 생산 중단으로 전국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화물차운수사업법상 집단 화물운송 거부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경우 등에 국토교통부 장관이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는데, 해당 법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건 법 개정이 이뤄진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 업무개시명령을 심의하기 위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2022.11.29 [대통령실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윤 대통령은 파업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모든 방안을 강구해 대처하겠다"며 사실상 업무개시명령 적용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부 주유소에서는 재고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며 "(유류차 등에 대해) 추가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 즉각 현장조사…명령서 송달 과정서 논란 불가피
국무회의 심의 직후 국토부는 즉각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집행에 들어갔다.
국토부와 지자체 공무원, 경찰 등으로 꾸려진 76개 팀은 오후부터 바로 시멘트 운송업체에 대한 일제 현장조사에 나섰다. 운송업체와 거래하는 화물차주의 명단, 주소, 운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업무개시명령을 송달받은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송달 다음 날 자정까지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과 3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화물차 기사들이 업무개시명령서를 받지 못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 때처럼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당시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대한의사협회 간부들은 유죄가 확정됐으나, 명령서를 송달 받지 못한 일부 의사들에 대해선 대법원이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명령서 자체를 수령 거부하면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국토부는 우편 송달을 원칙으로 하되 두 차례 반송되면 제3자 송달, 문자나 카카오톡 등을 통한 전자송달, 공시송달까지 시도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수 사업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빨리 복귀하도록 하는 게 업무개시명령의 목적"이라며 "절차를 최대한 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화물연대 "굴하지 않고 투쟁 이어간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생계를 볼모로 목줄을 쥐고,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하며 삭발 투쟁에 나섰다. 16개 지역에서 동시에 결의대회를 열었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과 취소 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있다.
소송이 제기되면 정부는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으로 거부했고, 이에 따라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상당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업무개시명령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파업으로 정부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화물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간 팽팽한 대치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파업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면담을 끝냈다. 양측은 30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2차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대화에 진전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토부는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하고 품목을 확대하라는 입장을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 전국 건설현장 59%서 레미콘 타설 중단
이러는 동안 파업 엿새째 산업 현장 곳곳의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전국 건설 현장 985곳 중 577개(59%) 현장에서 지난 25일부터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
시멘트의 경우 일부 비조합원이 운송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운송량은 평시 대비 11%가량(2만1천t)에 그쳤다.
레미콘은 시멘트 재고 부족으로 생산량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날 생산량은 평시 대비 8%(4만5천㎥) 수준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의 37% 수준이다.
국토부는 수출입과 환적화물 처리에 차질이 누적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광양항에서는 이날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15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그쳤다. 평소 반출입량은 4천625TEU다.
다만 항만의 컨테이너 보관 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의 비율을 뜻하는 장치율은 62.8%로 평시(64.5%)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정부는 이날 오후 화물연대 7천여명의 조합원(전체의 32%)이 전국 180곳에서 집회 및 대기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신항에서는 트레일러 차량 유리창에 라이터를 던져 통행을 방해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3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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