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고수부지에 자유 데모 광장을 설치하자.” 이 구호는 필자가 지난 1994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서울은 큰 규모의 데모가 있을 때마다 온종일 도시 전체가 심장이 마비된 것처럼 꽉 막혀버린다. 교통이 멈춰버리면 택시, 버스기사들은 물론 차량을 이용하는 모든 종사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주변 상인들은 장사를 못해 아우성이다. 데모꾼들의 행사가 있는 날은 거대 도시 하루가 망치는 날이다. 데모가 불러오는 간접 악영향은 적지 않게 국력 손실을 낳는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데모(demonstration)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리 중의 하나이다. 동시에 국가 권력에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치 참여 수단의 하나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도 억제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데모가 ‘존중 불가침’의 국민 기본권이라고 해서 함부로 타인에게 피해를 가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데모에 대한 원칙과 부수적 악영향을 검토하여 고안해 낸 것이 ‘자유 데모광장 설치’ 공약이었다.
즉 데모 군중 숫자가 얼마든지, 어떤 주장 ‘구호’를 외치든지, 밤낮 어느 때든지, 물론 남녀노소 아무나 자유롭게 데모할 수 있는 광장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물론 데모의 성격에 따라 관계부처 담당 공무원이 배석하여 데모대가 주장하는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도록 하고 또는 필요하면 데모 주체와 토의 설득도 하는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부칙도 구비하자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자유 데모광장’ 설치가 실현되면 국내외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국가로서의 면모 향상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었다. 또한 한강유역 유휴지를 이용해 자유 데모광장을 설치하면 데모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한강유역 유휴지를 선택했던 것이다. 또 서울 시내 중심부 집단 데모를 금지시키는 대안으로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간을 지정, 자유 데모지대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나는 지금도 자유 데모광장 설치 공약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남아 있다.
요즘 한 국내 군중 데모 양상을 보면 한숨을 지나 절망감이 치솟을 지경이다. 데모 군중들의 구호, 주장들이 왜 이리 살벌한가. 요구사항을 외치기 이전에 상대를 무찔러 버리자는 원한, 복수, 결판 등의 목소리만 귀청을 때린다.
임기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된 ‘윤석열은 물러가라’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한쪽에서 ‘빨갱이들 다 죽여라’ 구호가 자칭 목사가 이끄는 데모대에서 온종일 고함을 지르고 있다. 179석의 다수 야당 의원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코미디 참상(?)도 연출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미끼로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대국민 선동이 노골화된 마당에 윤석열 정부는 야당대표 이재명만 몰락시키면 국민 지지가 확 올라가는 줄 알고 ‘허무 정치쇼’만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3천명의 미국인이 희생당했을 당시 미국인들의 대응 자세를 참고해 보라. 그들은 전 국민, 여야 정치인 모두가 함께 울고 함께 애도했다. 외무, 국방, 내무 어느 책임자에 대한 파면이나 해임을 주장하지 않았고 백악관 앞 항의 데모나 국민서명운동도 벌이지 않았다.
9.11 참사를 끌어들여 여야가 국정조사 여부를 둘러싸고 옥신각신 정치 추태를 연출하지도 않았다. 유족 일부까지 포함시키는 합동 조사단을 만들어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창출해 냈다. 그리고 결국 알카에다 주범인 빈 라덴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하였다.
누군들 이태원 참사를 예측 못하고 사건 발생에 대비하지 못한 담당자들 처벌을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의 이태원 참사 악용, 횡포 양상은 치졸한 평가를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지금 우리 정치판은 거대 야당의 횡포와 무능 집권 여당의 아마추어리즘으로 꽉 막혀 출구를 못 찾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매우 시급한 현안, 내년도 국정 예산이 한 건도 타결을 못한 상태이고 정부 여당이 제출한 법안 77건이 단 한건도 다수 야당의 반대로 통과가 안된 상태다. 이런 극한 정치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야만 깡패식, 죽기 살기식 데모가 서울 한복판을 휩쓸게 될지 공포감을 떨칠 수가 없다. 어느 국가든 국민의 데모 형태는 그 국가의 정치수준을 대변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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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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