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지로부터 음악 CD 한 장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것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대표작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휘파람 소리와 베이스 기타에서 울려 나오는 경쾌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타 음악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일약 대스타로 만들어 주었던 영화 주제가를 작곡한, 상업영화음악의 대부 격인 뮤지션이었다.
나는 어련히 상업영화의 보편적인 달콤한 음악이려니 지레 짐작하며 20곡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5곡만이 서부 영화의 주제가였고 나머지 15곡은 가브리엘 천사를 찬미하는 오보에로 만든 곡, 선지자 모세를 찬양하는 합창곡과 신을 찬양하는 여가수의 아름다운 노래 등 성스럽기 그지없는 성가와도 같은, 나의 영혼을 심연으로부터 송두리 채 흔들어 놓는 그런 명곡이었다.
10월 중순의 날씨가 너무나 맑고 화창하여 뒤뜰로 나가는 문을 활짝 열고 덱으로 나왔다. 뒤뜰 꽃밭 너머로 펼쳐져 있는 20미터가 넘는 빨갛게 물들은 키 큰 활엽수로부터 낙엽들이 휘날려 와 방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모리꼬네의 CD가 들어 있는 휴대용 오디오 박스를 들고 뒤뜰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가 낙엽이 가득 달린 나무 아래에 발길을 멈추고, 작은 오솔길 옆에 놓여있는 조그만 나무 벤치에 앉았다. 모리꼬네의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 했다. 조용히 명상을 해 본다. 눈앞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운,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람들… 그들 중에서 제일 먼저 누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누나는 나의 어머니의 먼 친척의 딸이었는데, 큰 외삼촌이 사시는 진주시 근처의 문산 이라는 면에서 누나의 아버지는 가을이면 정부양곡을 탈곡해주는 큰 정미소와 수많은 논과 밭, 산을 소유한 문산면 최고의 부자 집 외동딸이었다.
누나와 그녀의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6살 이었을 때, 나는 나의 어머니와 함께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누나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누나는 나를 너무나 이뻐해 주었고, 정미소 뒷산에 있는 누나의 밤나무 과수원에 나를 데리고 가서 밤나무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져 있는 입이 떡 벌어진 밤 껍질을 나뭇가지로 벗기고서는 알밤들을 주워서 내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 수북이 담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누나의 넓은 방에서 따뜻한 온돌 아랫목의 이불속에 두 발을 묻어 놓고, 청동 화롯불에 알밤을 구워 부지런히 나의 입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고 시원하고도 찬 식혜 한 그릇을 부엌에서 가져와 군밤과 함께 주었다.
나는 누나의 자애로운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맛있게 군밤을 먹었다. 그날 낮에 밤 따러 뒷산에 갔다 온 탓인지, 맛있는 군밤을 배불리 먹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눈꺼풀이 스르르 풀리며 졸음이 왔다. 누나는 나를 살포시 안으며 책 한 권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눈을 부비며 그 책을 쳐다보았다. 그 책은 성경책이었다.
누나는 나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지요? ”
“하나님 ”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사랑해 주시는 분은 누굴까요? ”
“예수님 ”
나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나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르쳐 주신 분이 누나였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 주었던 누나가 여고를 졸업하고서, 부모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속세를 떠나 수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과 속세에서 이룰 수 없었던 영원한 진리탐구를 향한 누나의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영혼이 그녀를 속세를 떠나게 하고, 영원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이었다.
누나가 출가한 후, 누나의 부모님은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다 정리하고, 외딴 산골 마을에 들어가 여생을 가난한 사람과 불행한 어린 고아들을 돌보면서 보내셨다고 했다.
진실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어떤 추억보다 아름답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으며,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지금도 누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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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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