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집권 명분으로 안보 내세운 시진핑‥ 세계 곳곳서 안티 시진핑·빨라지는 탈중국
▶ 대만 갈등 격화·주한미군 역할 확대 부담도
중국의 첫 번째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2018년 4월 서태평양에서 기동하고 있다. [로이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이달 16~22일)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안보’(50번)였다. 시진핑 신시대의 새 통치 이념으로 꼽히는‘중국특색사회주의’(21번)보다 두 배 이상 입에 올렸다. 이는 시 주석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외부 세력을 배격 대상으로 몰고 안보를 내세워 내부 단속을 하는 것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 명분으로 삼은 중국몽 실현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전제돼 있다. 홍콩과 소수민족 억압, 대만 통일을 위한 준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를 방해하는 서방을 적대화할수록 시 주석은 집권 명분 강화라는 부가적 과실을 얻게 된다. 외부 간섭을 공격으로 간주하고 상대를 물어뜯는 중국의 ‘전랑(戰狼)외교’는 더 거칠어질 전망이다.
■ ‘핵억지력 강화·대만 무력통일’ 꺼내든 시진핑
미국에 대한 시 주석의 인식은 급변했다. 2017년 19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그는 ‘신형 대국 관계’를 외교 노선으로 제시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상호 존중하고, 협력 공영하자”는 뜻이다. 이번 당대회의 막을 올리며 시 주석은 “다른 국가가 중국 국내 정치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며, 냉전적 사고방식과 이중 잣대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못 박았다. 협력과 대화 여지를 남겨 뒀던 5년 전과 확 달라진 것이다.
명실상부한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암시하는 표현도 업무보고 곳곳에 박혔다. 시 주석은 “강대한 전략적 위력체계 구축”을 주문하고 “충돌 억제력”을 언급했다. 대미 핵억제력 강화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또 대만 통일을 염두에 둔 듯 “국지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군 건설’ 같은 원론적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의 핵무력 보유’와 ‘대만 통일’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셈이다.
시 주석은 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과업으로 꼽으며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화적 통일을 선호한다”고 전제했지만, 대만 침공이라는 극단적 옵션을 거론해야 할 만큼 시 주석이 초조해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담강대 장우예 교수는 영국 타이낸셜타임스(FT)에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한 외부(미국) 개입 가능성을 반격하는 데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최근 대만 유사시 군사력 투입 의지를 재차 드러낸 데 대한 반응이라는 뜻이다.
■세계 곳곳 반(反)시진핑 기류…빨라지는 탈중국
전랑외교는 양날의 검이다. 전랑외교 장기화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티 중국 기조 강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한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해 각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왔다”며 “시진핑 체제 장기화와 전랑외교 강화로 중국과의 외교·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탈(脫)중국’이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랜덜 슈라이버 2049연구소장은 미국의소리(VOA)방송에 “중국이 책임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세계가 깨닫고 있다”며 “중국이 어떤 의미를 갖는 국가인지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보다는 중국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취해온 유럽도 최근 들어 분명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관계, 중국의 대만 위협, 홍콩·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중국이 일으키는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정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EU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을 경쟁국으로 인식하고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중국을 포용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만큼 디커플링(중국과의 탈동조화)부터 가속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의회도 올해 7월부터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법안을 연달아 통과시켰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국제질서에서 유일한 경쟁자이자 지정학적 도전자’로 규정한 새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얼마 전 공개했다. 시 주석의 국가주석 3연임이 확실시되는 당대회에 앞서 각국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시진핑의 대만통일 구상에 “한국도 안보 부담”
한국의 입장은 더욱 복잡하고 난해해지고 있다. 서방의 시 주석에 대한 견제가 강해질수록 중국은 ‘약한 고리’인 한국을 붙잡아두기 위한 공세적 외교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해협의 미중 갈등 고조가 한국의 안보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현실화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올해 7월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역내 국가들은 대만 방어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며 “한국도 어떤 식으로든 대만 갈등에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만 방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대만에 군사력을 투입하자면 가장 가까운 주한미군 병력이 우선적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북한에 대한 억제력 약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대만 통일 시도가 한미동맹의 근본적 역할을 흔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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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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