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년 전 내가 결혼 했을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전기밥솥이 한국에는 없었다.
갓 결혼 하였을 당시 남편은 몇달 후 군복무 제대를 앞두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군부대 근처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집 주인 아저씨는 외항선원 이었다. 그는 외국을 자유로이 왕래하였으므로 그집 안방에는 외국의 진기하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 하였고 일본에서 사온 전기밥솥을 찬장 제일위 중앙에 전시해 놓고 있었다. 당연히 그집을 드나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은 전기밥솥을 가진 주인 아주머니를 몹시도 부러워 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다행히 결혼 선물로 받은 전기밥솥이 있어서 밥을 지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아니 새댁이 전기밥솥을 다 쓰네….”하면서 대경실색 하였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상상이 되지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러하였다. 시어머니께서 저희 신혼집을 보러 오셨는데 나의 전기밥솥을 보시고는 그만 눈을 떼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결국 시어머니께서 가실 때 나의 전기밥솥을 가져가시고 시어머니께서 주신 돈으로 새 전기밥솥을 장만하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는 먼저 재일교포 보따리 장수들이 전기밥솥을 풀어놓아야 살 수 있었고 그나마 그것도 운이 좋아야 살 수 있었다. 다시말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았다.
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한국 자체 전기밥솥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연탄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밥을 지었는데 끓어 오르는 밥물 때문에 안절부절 하며 밥이 다 지어질 때까지 꼼짝 없이 지키고 서 있게 되었다. 새삼 전기밥솥이 얼마나 편리하고 깨끗하고 누룽지 생기지 않아서 좋은지 절감하고 사방백방으로 새 전기밥솥을 사려고 수소문해 놓았다.
그때 그시절 가정주부들이 얼마나 전기밥솥을 가지고 싶어 했는지 물량이 없는데도 전기밥솥계를 만들어 오매불망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해 우리는 미국 이민길에 올랐는데 미국 도착 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국식품점에 들러 쌀, 간장 등을 사러 갔는데 가게안을 둘러 보다가 제일 뒤 구석진 선반위에 4개의 전기밥솥이 있는 걸 보고 그만 너무 놀라서 망부석처럼 꼼짝 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던 전기밥솥이 여기에는 4개나 있다니…. 그당시 일본은 전기밥솥이 보편화 되어 있었고 그 한국식품점은 일본인들이 하던 가게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다. 나는 이때 산 전기밥솥을 20년 이상 사용하였고 그때쯤 해서 현미바람이 불어 각종 미디어 신문, 방송등에서 씨눈이 살아 있는 현미를 먹어야 된다고 우리 한인들을 열심히 계몽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백미 밥솥에 현미밥을 지을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일본의 현미밥솥이 등장해 너도 나도 현미밥솥 구입 붐이 일고 있었다. 나는 이때 구입한 현미밥솥을 오늘날 까지 사용 하고 있는데 이 솥은 얼마나 다용도 다목적인지 현미밥, 떡, 약식, 갈비찜 등을 할 수 있으며 콩을 삶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또 세월은 많이 흘러 한국의 경제 부흥과 함께 새로운 쿠쿠 전기밥솥이 한국 시장에 나오면서 우리들 곁으로 오게 되었다.
이 새로운 전기밥솥은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라이즈한 모든 것을 알려 주는 소리나는 밥솥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이솥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이후 많은 재중동포들이 한국땅에 와서 제일 먼저 고르는 것이 전기밥솥 이었고 중국을 방문 할 때는 어김없이 전기밥솥을 사 가지고 출국 하였다.
오늘날의 주방기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진보하고 진화 하여서 시간 절약하고 노동력 절감하는 편리한 기구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들에게 전기밥솥의 등장은 과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가며 밥을 지었고 그 다음이 연탄불 위에 솥이나 냄비를 얹어 놓고 하였다. 전기밥솥의 선두주자는 일본이었고 몇해 전에는 캐나다계 중국인이 인스탄트 팟(Instant Pot) 을 발명해 우리들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 주고 있다. 이 솥은 크고 깊어서 백미밥, 현미밥, 국, 찌개, 갈비찜 등 만능 밥솥이다.
나는 이제 전기밥솥 부자가 되었고 그 옛날 셋집에서 전기밥솥을 사용 하다가 주인집 아주머니로 부터 핀잔 받은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며 요즈음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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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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