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대외금융자산 충분하다” 보지만 17%는 “무역적자 누적 계속되면 일순간 외환 보유액 증발할수도”
▶ 글로벌 금융위기 최대 진원지는 39% “중국”·32% “영국” 등 지목해
한미 금리차 버틸 체력 줄어 들어…감세 등 기업활력 살릴 방파제 시급
경제전문가 긴급 설문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서울경제가 16일 실시한 ‘긴급 경제 전망 조사’에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해 무역적자가 누적된다면 일순간 외환보유액이 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현재 확보한 대규모의 순대외 금융자산 등을 고려하면 외국자본이 일부 빠져나가더라도 당장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 않다”면서도 세계 경제 상황에 따라 갑작스레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경제 전문가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응답자의 83%는 당장 우리나라에 위기가 불거질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원화 값이 추락하며 자본 유출이 거세지고 있지만 해외에 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던 이전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위기가 길어질수록 누적된 충격이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제일 걱정되는 것은 올해를 넘어 내년 이후까지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경우”라면서 “장기 침체가 왔을 때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징조는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던 경상수지가 최근 들어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가운데 8월에는 경상수지마저 30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한 외국인들이 투자 자금을 급속히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 이사장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해서 누적되면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금리 차를 버틸 체력이 줄어든다”면서 “이렇게 되면 자본 계정에서도 문제가 생겨 우리나라에도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커지는 경상 적자 우려를 두고 정부는 “올해 연간 경상수지는 3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보일 것(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내년 이후다. 경상수지가 이상 신호를 보인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기가 후퇴한 영향이 크다. 걱정되는 대목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내년에도 거듭되면 경기 침체의 폭은 더 커지고 이와 맞물려 우리 무역적자 규모가 더 불어날 수 있는 점이다. 실제 이번 설문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들의 비율은 74%에 달했다. 내년 하반기에도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본 비중은 25.7%로 집계됐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물가가 우선 잡혀야 미국이 금리를 조절할 텐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너무 많은 돈을 살포했다”면서 “세계 경제의 여름이 길었던 만큼 겨울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깊게 빠질수록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설문 응답자 중 절반가량(47%)은 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중국을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 경제를 지탱해온 부동산 시장 붕괴가 대형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30%에 달하는 부동산 산업의 침체가 이어지면 중국 경제 동력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연쇄적인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커지는 위기 신호에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인의 시선은 전과 달라져 있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지난달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게 단적인 예다. 국가신용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인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 지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29일 기준 61bp까지 상승했다. 7월 6일 기록한 종전 연중 최고치(56bp)를 넘어섰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정부가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정부는 경기 침체에 대응해 민간 활력을 살리겠다며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감세 법안을 마련했지만 야당의 강한 반발에 밀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 법인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51%로 집계됐다. 이 교수는 “(법인세 인하를 통해) 민간의 활력을 돋우는 일은 필요하지만 당장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문에 참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인사는 “야당의 반대로 세법개정안 통과가 어렵다면 개정 시기를 아예 1~2년 미루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당초 예상됐던 감세분을 정부 곳간으로 돌려 위기에 대응할 방파제로 삼는 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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