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자율권 존중”,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찬반
▶ 친고죄·반의사불벌죄로 개정 제안도…법조계·판례에선 폭넓게 인정
방송인 박수홍 [연합뉴스 자료사진]
친족 간 재산 범죄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의 존폐 논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일반인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이 규정은 유명 방송인 박수홍씨 사건으로 관심사가 됐다. 박씨의 친형이 7일(이하 한국시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 되는 과정에서 박씨의 부친이 돈을 횡령한 건 친형이 아니라 본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횡령 주체가 박씨의 형이 아닌 부친이 되면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될 수도 있다.
형법 328조의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절도 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 그 외 친족이 저지른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한다.
박씨 부친으로서는 온 가족이 재산 분쟁에서 벗어날 '묘수'로 판단했을 법하다.
친족상도례는 가까운 친족 사이에는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 친족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선 가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이후 친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데다 친족을 대상으로 한 재산범죄가 증가하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친족상도례 개정안 국회서 무산…한동훈 장관도 "개정" 의견
국회에서 친족상도례 개정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4대 국회 때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 중 동거가족을 제외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선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성년후견인의 재산 범죄에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입법이 시도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 역시 19대와 유사한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국회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친족상도례를 개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친족상도례 규정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이병훈 의원도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에 한 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피해자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친족간에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 민주당 장철민 의원 발의 개정안도 눈에 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은)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개정에 동의했다.
◇"생활비 안주는 남편 지갑 손대도 처벌하나"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12월 '입법과 정책'에 '친족상도례 개정 방안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국민 여론이 친족상도례의 부당함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도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조사관은 이 제도가 가정에까지 공권력이 개입하는 걸 막는 순기능이 있다면서 "아내가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 지갑에서 소액의 생활비를 훔치거나, 자녀가 학원 교재비라 속이고 받은 용돈을 군것질에 쓴 것까지 수사기관이나 국가형벌권 개입을 허용하는 건 과도하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별거 중인 배우자나 자녀를 버리고 떠났던 부모를 통상의 부부나 부자관계로 바라보기 어렵다"며 "피해자의 억울함이나 가해자의 죄질 등이 형면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획일적으로 피해자 호소에 귀를 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친족에게 형을 면제하는 규정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같은 소추조건 규정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혐의를 제한하자는 견해도 있다.
류기환 세한대 경찰행정학과교수는 '친족상도례 규정의 개정 방향' 논문에서 "해악성이 크다고 인정되는 죄를 범한 경우는 친족상도례 규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자의 지적장애 등을 범죄에 이용했다면 해악성이 친족상도례 규정의 입법 취지를 무의미하게 한다"며 심신장애를 이용한 재산범죄에는 우선 형면제 규정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산범죄 피해자는 피해복구를 우선하는 만큼 가까운 가족 간 재산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시했다.
◇판례·법조계에선 폭넓게 인정 분위기
법조계에선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는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걸 막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며 합헌 입장을 유지한다.
2015년 4월 "공무원인 직계혈족에게 재산을 편취당하고도 친족상도례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처분도 불가능하게 됐다"며 청구된 헌법소원 사건은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권리를 침해당한 후부터 1년 이내에만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것이다.
권리 침해 상태가 청구 시점까지 지속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판단을 해주는 전례가 있었음에도 이 사건은 판단을 피했다.
한술 더 떠 대법원은 2013년 9월 친족상도례를 형법상 재산범죄는 물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재산범죄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현재까지 이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조계는 가족 내부의 자율적인 결정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는 취지에 따라 친족상도례를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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