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대한민국은 대출금리가 20%를 웃돌고 원·달러 환율이 2000원 가까이 치솟으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 부도기업이 속출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 조정과 감원으로 일자리가 없어져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 났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다시 외환위기의 악몽이 소환되고 있다. 28일 마감 환율 1,439원 90전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킹달러’ 현상으로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의 가치 하락이 지속된다면 자본의 아시아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짐 오닐은 “‘달러당 150엔선’이 뚫리면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의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7일 엔·달러 환율은 144엔선이다. 통신은 한국의 원화, 필리핀 페소, 태국 밧화 등 경상수지가 적자이거나 적자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의 통화가 취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5개월 연속 적자 상태이고 경상수지 흑자는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올 들어 누적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92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8월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마이클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주식전략가는 “역사적으로 달러화 강세는 금융위기나 경제위기, 또는 둘 모두를 포함한 경제난이 터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고 경고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내외 건전성은 아직 외환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8월 말 기준 4,364억 달러로 세계 9위권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도 7,441억 달러나 갖고 있다. 무디스의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Aa2로 상위 세 번째 등급이다. 영국·일본보다도 높고 프랑스와 같은 등급이다. 국가신용도 위험 수준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7월6일 56bp(1bp=0.01%포인트)까지 올랐다가 9월 15일 32bp까지 떨어진 후 다시 9월27일 52bp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CDS 프리미엄은 캐나다·포르투갈·스페인 등과 비슷한 수치여서 부도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도 외환위기 당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부채비율이 수백%로 취약했으나 지금 우리 기업들은 국가신용도와 버금가는 신용도를 자랑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신용도 역시 나쁘지 않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종금사와 같은 금융회사도 없다.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곳곳에서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최근의 과도한 환율 급등은 헤지펀드나 외국 투자은행들의 환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도 일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주 미국이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 다음날 하루 동안 영국·스위스·대만·인도네시아 등 13개국이 자국통화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섰다. 투기 세력들은 한국이 막대한 가계부채 문제에 가로막혀 미국의 연속적인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그 결과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환율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최고치로 상승한 단기외채 비율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올 2분기 단기외채 비율은 41.9%로 2012년 2분기 45.5% 이후 최고다.
따라서 1997년 외환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위기 상황은 이미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 전환 전망과 함께 미국이 당분간 자이언트스텝·빅스텝 등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외국인 자금 이탈도 계속되면서 환율 추가 상승, 금리 상승, 주식·집값 하락, 경기 부진 등 복합 위기 상황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국민적인 ‘금 모으기 운동’ 등 단합된 힘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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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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