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는 ‘핫 마이크’ 혹은 ‘오픈 마이크’라는 용어가 있다. 마이크가 켜져있는 줄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실수가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런 용어가 있다는 것은 외국에서도 정치인들이 비속어를 말하는 ‘실수’가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
최근의 사례로 올해 1월24일 미국에서 발생한 ‘발언 사고’를 들 수 있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각료들과 물가 안정을 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대통령에게 인플레이션에 관해 질문했던 폭스뉴스 기자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멍청한 XXX(what a stupid son of bxxxxx)”라고 말하는 것이 마이크에 잡혔다. 물론 해당 기자를 향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고 기자들이 자리를 떠날 때 대통령이 혼잣말처럼 한 말이 꺼지지 않은 마이크에 잡힌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 시간 뒤에 해당 기자에게 전화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대선 직전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딕 체니에게 뉴욕타임스(NYT) 기자에 관해 언급하며 비속어를 사용했다가 마이크에 잡힌 적이 있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이 한 말은 해당 기자가 ‘메이저리그급 나쁜 X(major league asxxxxx)”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마이크가 켜져있었지만 대통령이 이를 모르고 말했다가 논란이 된 것이다. 이렇듯 미국 대통령들도 ‘비공개’라고 착각하면 험한 비속어를 입에 올린다. 비속어 혹은 욕설이 정치판의 주요 의제가 된 경우는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난 대선 당시의 욕설 논란이 그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에서 벌어진 ‘비속어 논란’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 직후 윤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 장관과 걸어가며 한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초 언론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대통령실 측은 이런 보도가 잘못됐다면서 해당 발언의 정확한 워딩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은 “이 XX들”이라는 표현이 누구를 지칭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실의 주장처럼 “이 XX들”이 국내 정치인들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바이든 대통령의 사례처럼 일단 사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도 공식적인 자리가 끝난 상태에서의 핫 마이크였기 때문에 백악관 측은 “사적인 말”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것으로 ‘사고’를 마무리했다. 이런 미국의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부적절한 언급을 해서 이것이 논란이 되면 발언 당사자가 직접 인정하고 ‘신속하게’ 사과하는 것이 최선의 수습책이라는 것이다.
‘재발 방지책’도 중요하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미국과 한국을 막론하고 대통령들이 미디어 환경에 지나치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선 당시부터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몰리는 미디어 환경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익숙함’은 핫 마이크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항상 명심해야 할 부분이 나온다.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긴장이 풀어지면 실수가 나오고 그 실수는 곧바로 정치권의 논쟁거리가 돼서 대통령을 공격하기에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대통령 자신에게도 손해다. 대통령 본인은 최대한 국익을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하겠지만 이런 논란이 발생하면 그런 치적이 묻혀 버리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수’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때로는 능숙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태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익숙함을 능숙함으로 승화시켜야지 나태함으로 변하게 놓아둬서는 안 된다. 지금 윤 대통령은 과연 어떤 상황인지 스스로를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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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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