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에 기댄 괴물들이 여의도에서 춤추고 있다.”
한 정치인이 한숨을 쉬면서 ‘괴물론’을 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궤도 이탈로 혼돈에 빠진 정치를 겨냥한 것이다. 글로벌 패권 전쟁 속에서 주요 강국들이 전략 산업 지원을 위해 입법 속도전을 펴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은 뒷짐을 지고 권력 싸움만 하고 있다. 정치 실종이다. 전·현직 여야 대표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와 이 전 대표는 닮은꼴이다. 이념·세대에서는 갭이 크지만 ‘팬덤 정치’ ‘자기 정치’ ‘현란한 언변’ 등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옆에는 ‘개딸’ ‘준빠’ 등의 팬덤이 있다. 팬덤 정치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응원과 다른 입장을 가진 인사에 대한 융단폭격을 통해 혐오 정치를 부추긴다. 두 사람은 선공후사(先公後私)와는 거리가 멀고 ‘자기 우선 정치’에 빠졌다. 이들이 화려하고 거친 입심으로 선동과 대결에 능하다는 것은 더 보탤 필요도 없다.
이 전 대표는 참 영리하고 약았다. 특히 유리한 싸움터를 선점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윤핵관’ 딱지를 붙이고 늘 이들을 링으로 끌어낸다. 그러면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 다수와 보수층 일부까지 박수를 치게 된다. 무능하고 흠결이 적지 않은데도 권력에 집착하는 일부 윤핵관의 한심한 행태는 이 전 대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이 전 대표는 성 상납 증거인멸 사주 의혹이나 대선 당시 두 차례 당무 거부 등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윤 대통령을 겨냥해 ‘신군부’ ‘개고기’ ‘양두구육’ 등의 직격탄을 쏟아내면서 ‘민주화 투사’ 흉내를 냈다. 연일 내분에 휩싸인 집권당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나 거대 야당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 지지층을 우군으로 삼으려는 노림수다. 그러나 최근 한국갤럽의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 결과는 그에게 뼈아픈 뉴스였다. 이 전 대표의 비호감 비율은 65%로 1위였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 대표의 최대 과제는 연쇄 ‘사법 리스크’ 탈출이다. 국회의원직과 야당 당수 등의 ‘갑옷’까지 입게 된 이 대표는 기소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터준 당헌 80조 개정 등을 통해 ‘3중 방탄’을 시도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이 대표를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했고 경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그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런데도 이 대표는 제대로 소명하지 않고 ‘말꼬투리 잡기’ ‘정적 제거’라며 사법기관을 겁박한다. 제1야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대표 경호’ 역할에 매몰돼 있으니 당내에서도 탄식이 나온다.
“이럴 바에는 당 대표를 없애고 미국식 원내 정당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 대표 제도가 20년 만에 수명을 다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야 유력 정당들은 당초 당수를 ‘총재’라고 부르다가 2002년에 ‘대표’로 이름을 바꿨다. 새천년민주당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총재의 사퇴 이후 2002년 4월 한화갑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했다. 한나라당도 이회창 총재 시대를 끝낸 뒤 같은 해 5월 서청원 대표최고위원을 뽑았다. 명칭이 변경된 후에도 ‘제왕적 당수’의 기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대권·당권의 분리로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지고는 했다.
당 대표는 원내·외를 아우르면서 당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맡는다. 총선 및 지방선거 때는 후보 공천을 좌지우지한다. 또 휘하에 당 대변인단을 두고 상대 정당을 때리는 성명·논평을 내게 한다. 정책 수립이나 입법, 예산 심사 등 지휘는 원내대표의 몫이다. 결국 대표는 당내 파워 게임과 여야 정쟁 등 역기능만 주로 하게 된다. 이런 당 대표라면 더 이상 필요 없다. ‘정치 박물관’으로 보낼 때다. 이 경우 선거 후보 공천을 미국처럼 상향식 오픈 프라이머리(예비 경선)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참에 여야가 원내대표 중심으로 국회 일로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괴물들의 행진’을 끝내고 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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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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