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웁탐방 - 영월 김삿갓면 모운동 마을
‘김삿갓면은 강원도 최첨단 지역으로 주민의 8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청정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 국제슬로시티로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영월군 김삿갓면의 어느 마을 소개 글이다.‘최첨단’의 근거가 불분명한데, 영월의 지명만큼은 고정관념을 깨는 최신식이다. 읍내를 기준으로 남면과 북면이 그대로이긴 하지만, 한반도면 무릉도원면 산솔면 등은 지형적 특성과 상징물을 내세워 개조한 경우다. 영월 동쪽의 김삿갓면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담쌓을 결심, 김삿갓유적지
단양 영춘면과 경계 지점에 지명의 유래가 된 김삿갓유적지가 있다. 문학관과 묘역, 그가 살던 집을 포괄하고 있다. ‘방랑시인’ 하면 전국을 유람하며 풍류를 즐기는 과객으로 여기기 쉽지만 김삿갓이 얼굴을 가린 연유는 풍류와 거리가 멀다.
김삿갓(김병연·1807~1863)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 부사로 있다가 반란군에 투항했다. 역적이 된 조부는 참수당하고 가족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부친은 도피 생활 중 사망한다. 모친이 4형제를 데리고 숨어든 곳이 이곳 영월 산골짜기다. 그렇게 외부와 벽을 쌓고 살던 집안은 병연의 남다른 재주로 바깥 세상과 다시 만난다.
문장 솜씨가 뛰어난 병연은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20세의 나이로 급제를 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백일장의 내용이 조부의 역적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이었다. 뒤에 어머니로부터 가족사를 알게 된 병연은 삿갓을 쓰고 평생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이어간다. 나라에 충성하자니 불효가 되고, 조상을 섬기자니 역적이 될 처지에서 그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았다.
개울 건너에 그의 묘지가 있다. 시비로 장식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양지바른 산자락에 작은 봉분이 있다. 근래에 세운 ‘시선난고김병연지묘’라는 비석을 제외하면 제단도 갖추지 못한 평범한 무덤이다. 김삿갓은 1863년 57세의 나이로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서 사망했는데, 아들이 3년 뒤 자기 집 가까운 이곳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했다.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엄연히 임금이 다스리던 나라였으니 번듯한 비석 하나 세우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가 살던 곳은 묘지에서도 약 1.6㎞ 떨어진 깊은 골짜기다.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민가가 한 채 있어서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지만 외부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숲속의 요정… 운탄고도 모운동
김삿갓유적지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망경대산(1,088m) 자락에 모운동 마을이 있다. 행정 지명은 주문리지만 언젠가부터 모운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침나절이나 비가 갠 후에는 어김없이 구름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의미다. ‘회운(會雲)’이나 ‘구름마을’이 아닌, 한글과 한자의 기묘한 조합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망경대산 정상 부위의 한 자락이 갑자기 툭 내려앉은 것처럼 분지가 형성된 고원이다. 느낌으로는 도교적 이상향으로 설정된 하동의 청학동과 비슷하다.
모운동은 옥동광업소 광산노동자와 가족들로 번성한 때도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무려 1만 명이 살았다니 옹색한 산동네가 아니라 ‘공중도시’였다. 당시 영월읍내에도 없었다는 극장을 비롯해 초등학교와 우체국도 있었다. 그러나 석탄산업합리화로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모운동도 급속히 쇠락했다. 지금은 28가구에 35명 남짓 살고 있는, 잊힌 산골 마을이 되고 말았다.
마을 뒤편으로 나가면 운탄고도와 이어진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고원 도로라는 뜻이지만, 최근엔 양탄자처럼 구름이 깔린 길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일명 산꼬라데이(산골짜기) 길이라고도 하는데 곳곳에 광업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초입에 옥동광업소 동발(동바리) 제작소 건물이 폐허로 남아 있다.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이다. 조금 더 가면 수풀에 방치된 건물이 보이고, 바로 옆에 황톳빛 침출수가 흐르는 갱도가 보인다. 이 물을 근처 협곡으로 빼내 인공폭포를 만들었는데, 까마득한 계곡으로 물줄기가 떨어져내리며 암반을 붉게 물들였다. ‘황금폭포’라 이름한 이유다. 황금폭포 전망대 옆에는 탄차에 기대어 쉬는 광부상이 세워져 있다. 작품명 ‘휴식’이다.
모운동이 어떤 곳인지는 가보지 않고 알 수가 없다. 해발 550m로 아주 높은 곳이 아닌데도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는 이유는 마을로 가는 가파른 지형 때문이다. 마을 맨 위쪽에 옥광교회가 있다. 탄광이 번성할 때인 60년 전에 설립한 교회다. 문현진 목사는 4년 전 부임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위성사진으로는 평평하게 보이니까 이렇게 높은 줄 몰랐죠. 굽이굽이 올라오는데 진짜 마을이 있을까 생각되더라고요. 이 굽이 돌면 보일까, 저 굽이 돌면 나올까 세어보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드디어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정말 ‘숲속의 요정마을’ 같았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봤던 밤하늘 은하수를 수십 년 만에 다시 보는 것도 황홀했습니다. 외지인이 오면 마을 소개 겸 자랑도 하고 막 행복합니다. 평생 여기서 목회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
영월=글 최흥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