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은 나무, 돌, 옷감, 살갗 등에서 조직의 굳은 부분과 무른 부분이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나타나는 상태나 무늬를 말한다.
물결, 숨결, 나뭇결, 살결… 세상에는 수많은 ‘결’이 존재한다. 고기도 결대로 썰리지 않으면 푸석해지고 맛도 덜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인생은 어떨까?
사람은 저마다의 결이 있다. 결은 그 사람의 삶이다.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의 무늬이며 색깔이다. ‘결이 다르다.’ 혹은 ‘결이 다른 사람이다’는 의미는 삶의 기준과 신념이 서로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와 달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코드가 안 맞다고도 한다.
결은 타고난 모습이다. 누구나 결대로 살길 원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엇결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어떤 경우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당한 자세는 행복의 원천이다.
삶에도 결이 있다. 누군가는 순탄하게 산다. 누군가는 결을 역행하여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런 삶을 산다. 결을 읽고 결대로 살면 마음의 불편함이 최소화 된다. 마음을 비우면 욕심이 사라지고 결대로 살 수 있다.
결을 따라 산다는 것이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과 다르다.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을 결에 따라 살아 갈 때 편하게 롱런 할 수 있다. 각자의 결대로 자기답게 살되 자신과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을 존중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결대로 삶을 살고 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결이 있다. 굽이치는 인생에도 결이 있듯 빛에도 소리에도 결이 있다. 둥근 돌에도 모난 돌에도 결이 있고, 물에도 결이 있다. 파도처럼 움직이는 물의 모양이나 상태를 물결이라 한다. 나무도 결이 있다. 나뭇결대로 도끼를 내리치면 큰 장작도 수월하게 쪼갤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굴곡많은 우여곡절의 인생길에도 결이 있으니 곡선과 직선으로 씨줄과 날줄로 자라는 삶의 결을 따라 결대로 살아가야 편하다. 결대로 살면 인생이 술술 잘 풀리고, 결을 역행해서 살면 인생이 꼬인다.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 편에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고사가 나온다. 백정인 포정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수월하게 소의 뼈에서 살을 발라 낸다. 포정은 문혜왕이 얼마 만에 한 번씩 칼을 가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한다. “제 칼날은 19년 사용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소를 수천마리를 잡았어도 결대로 칼을 쓰니 칼날에 무리가 가지 않아 항상 새것과 같고 그러다 보니 굳이 숫돌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 몸의 생긴 그대로를 따라갑니다(導大窾因其固然 도대관인기고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주역(周易)에 64괘가 있다. 우주 만물의 인과법칙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괘가 택뢰수괘(澤雷隨卦)이다. 택뢰수괘는 연못 속에서 우레가 번쩍이는 모습을 상징한다. 수(隨)는 ‘따를 수’로 약자를 강자가 따라가는 것이다.
택뢰수괘의 괘사(卦辭)는 결대로 살면 만사가 형통하다고 말한다. 인생을 결대로 살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겸손함을 갖추면 주변의 환경 역시 결에 맞춰 움직인다. 내 삶의 방향이 올바른지 타인들과 소통하며 확인하는 개방성도 필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탐대실하지 않는 것도 결대로 살기 위한 주역의 지침 중 하나다. 결대로 살면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택뢰수괘의 괘사에 담긴 메시지다.
언제까지나 때만을 생각하지 말고, 세력을 나타내는 것에만 열중하지 말라. 써야 할 힘을 저축하기 위해 쉬어야 되고,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긴 안목으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택뢰수괘에서 말하는 결대로 사는 인생이다. 세력이 강한 것이라도 능력을 숨기면서 약한 것을 결대로 따르는 것이 크게 형통하고 이롭고 바른 것이어서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어야 할 사람은 진정 결이 다른 사람이다. 만사를 억지로 움켜쥐기보다는 비우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결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결이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다. 오늘따라 결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그립다.
<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