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대한 수많은 상념은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까지의 기억,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통신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도 신통할 정도로 그 지점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훌쩍 20년의 세월이 흘러 버렸다. 거꾸로 미국이민 30년 후에 역이민하면 어떨까, 마찬가지겠지만 그 정도가 훨씬 덜할 것 같다.
문화적 변화 속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인간관계와 관련된 국민성에 기인한다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국제결혼가정임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지극히 일반적이지만 이는 개개인의 역사인식과 해석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최근 한국 근대사의 두 사건인 ‘일제 36년’과 ‘한국전쟁’을 둘러보는 여러 행사를 참관하면서 같은 사건인데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역사 인식체계를 갖게 되었을까,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어느 정도 비슷하지도 않다는 걸 느꼈다. 장구한 역사적 사실중에서 ‘태평성대’는 대체로 기억에 짧고, ‘환란’의 기억이 더 많이 회자(膾炙)되는 것은 역사교육의 당위성 측면에서는 당연하다. 뒤집어 보면 환란때 리더그룹의 역사관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있었다. 7년간 나라전체가 위난을 당했다. 영웅 이순신이 등장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한참 지난후에 사가(史家)들이 다듬어 정리한 내용이다. 임진왜란 전후가 생략된 짤막한 ‘토막역사’만 역사가 아니다. 필요한 증거가 또 나온다면 역사는 다시 사실(史實)을 재해석 재정비해 나간다.
만약 임란(壬亂) 7년의 한가운데 실존했던 분들의 입장에서는 후세 사가들이 임란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했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겠는가, 그 분들은 살아 남아야 하는 눈앞의 현실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때로는 몸을 던져서 멸사봉공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 환란 중에도 적에게 투항하는 걸 천행(天幸)으로, 심지어는 적의 앞잡이가 되는 게 최상책으로 행동했던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러하니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한국사에서 점하는 보다 중요 지점은 ‘왜, 임란이 일어났는가, 그걸 예방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에 방점(傍點)이 있다고 본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 통신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의 전혀 다른 귀국보고서 등 사건의 전후까지를 망라한 입체적인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일제의 한복판에서 실제를 체험했던 분들의 심경이나 기억은 매우 다양했을 것이나 대부분은 억울, 분노, 좌절, 염세같은 느낌이었겠지만 체념, 순응, 가담, 출세의 현장도 뚜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가망이 없게 보였을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다는 시각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누가 이들을 거기에 계속 묶어 두려고 하는가, 그 사건속에서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가,’
비슷한 경우로 한국전쟁에서 ‘적이냐 아군이냐’를 직감적으로 구분해 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던 분들은 지금도 그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 여전히 있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후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분단과 단절, 그런 현상의 지속이 갖는 의미와 배경은 나중의 문제다. 그러니 스스로 그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 봐야 더 넓은 시야를 볼 수 있고 흐르는 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 수 있다. 일본 패망을 모른채 30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홀로 전쟁을 하고 있었던 일본군 패잔병 ‘오노다 히로’, 그 또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을 보냈다.
이렇듯이 개인적인 영웅담을 소중히 여기고 존경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진정 그분들을 위하고 나라전체와 민족을 위한다면 그런 역사적 비극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는 것보다는 비극적 상황의 막전막후를 입체적으로 조망토록 하여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그런 비극을 예방하는 향도적 원로로 거듭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드려야 맞다.
단절이 발전을 더디게 한다.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단절’과 ‘승계’를 엄중하게 구분하고, 국민들을 단절의 ‘토막역사’속에 가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민족에게 ‘분단’은 만악(萬惡)의 근원이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수많은 사다리를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은 민족의 숙명이다. ‘통일의 사다리’를 쌓거나 오르다가 그 아래 떨어져 통곡하는 수많은 선열들이 오늘의 한반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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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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