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국민의힘 주도 세력과 윤석열 대통령을 함께 겨냥한 이준석 전 대표의 공세가 당 안팎에서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 승리한 여당이 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표 직무대행 체제에 이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것은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전직 당 대표가 자신이 속한 당과 자신이 지지해야할 대통령을 싸잡아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더욱 이례적이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 이후 여당인 국민의힘이 격렬한 내홍에 휩싸이다가 마침내 당 대표 징계라는 파국으로까지 치달은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람직한 당정 관계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 간의 관계는 대통령이 주도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통령 주도형 이외에도 대통령-여당 공조형 당정 관계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대통령 주도형 당정 관계는 대통령이 국정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여당 지도부 역시 대통령의 정책 의지를 존중하면서 원내에서 이를 적극 구현하는 방식으로 설정되는 관계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이러한 당정 관계가 극단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돼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면서 여당을 좌지우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극단적 변종이 있기는 했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가장 일반적인 당정 관계의 모습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의회제 국가도 아닌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주도형 당정 관계는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대통령이 여당 및 여당 지도부와 설정하는 의사소통의 양식, 여당 내에서 대통령을 지원하는 핵심 세력의 행태와 판단력, 당내 반대 세력의 이견과 반발 정도에 따라 이러한 관계의 성과와 효율성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고 여론의 평가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여당 공조형 당정 관계에서도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협력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책화해 나간다는 공감대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다만 그 정책의 원내 입법 과정이나 대야 협상 과정에서 여당 지도부의 자율성이 일정 수준 존중되면서도 일부 여당 의원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입장과 달리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것이 그런대로 용인되기도 한다. 제도적으로 권력분립이 비교적 강하게 구현돼 있는 미국의 대통령-여당 관계가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편치 않은 기색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나 대통령의 설득에도 재정 지출 삭감을 줄기차게 요구해 이를 관철시킨 민주당 보수파 조 맨친 상원의원의 사례는 이런 공조형 당정 관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경우도 공조형 당정 관계로의 변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정당 자율성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소 강한 버전의 공조형 당정 관계를 추구할 기미를 보인 여당 지도자는 청와대나 당내 대통령 친위 세력으로부터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배척돼왔다. 또한 이러한 당정 관계는 해당 지도자의 하차로 종결되곤 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당정 관계일까. 한국 대통령제의 엄연한 현실과 정당의 자율성 확립이라는 시대적 요구, 이 양자 사이의 어딘가에서 바람직한 관계가 설정돼야할 것이다. 대통령 주도형 당정 관계가 여당 의원이 온통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식으로 퇴화하고 변질되는 것은 매우 시대 역행적이다. 또 공조형 당정 관계가 당내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생략한 여당 지도자의 독단적 판단으로 당정 간 분절 상황으로까지 비화하는 것은 정당 민주화보다는 여권 분열을 야기하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슬기로운 당정 운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의 공식적 소통과 사전적 조율, 충분한 공론화를 거친 후 채택되는 여당 지도부의 정책과 전략 등이 슬기로운 당정 운영에 긴요하다. 축구공이 둥근 것처럼 당정 관계도 둥글다. 당정 관계는 팀워크와 플레이어들의 드리블에 따라 득점으로도, 자살골로도 연결될 수 있다.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정무적 판단 능력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에 모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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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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