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거기 가면 한국사람을 조심해야 해.”
왜 그럴까? 왜 나라 밖에 나가서는 동족을 조심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 ‘파친코’에도 일본땅에 먼저 가서 살던 형이 나중에 도착한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그들이 조선인이라고 우리 친구는 아니야. 다른 조선인들을 조심해야 해.”
어디에나 나쁜 사람은 있는데 해외에서 동족을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에게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한인을 조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지 환경에 미숙한 사람을 등쳐먹는 작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우리말을 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한 배신보다 그 통증이 훨씬 더 크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안정감이 깨지기 때문이다.
“OOO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어쩌면 패 죽일지도 몰라요.”라고 말해준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그 정도로 분노가 쌓인 이유는 신분 안정과 관련되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가 아닌 OOO를 통해 이민 절차를 진행했는데 일은 어그러지고 돈만 날렸다. 그는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확실한 서류미비자(속칭 불체자)가 되어버렸다. OOO은 이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교회의 장로라서 믿고 맡겼기에 그의 배신감은 더 컸다. 그러니 아내, 아기와 함께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살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공립학교의 카페테리아 현장에서 한인 여자 몇이 함께 근무했다. 카페테리아 현장 근무자 중에 경력도 많고 영어도 퍽 잘하는 한인 아닌 아시안 여자가 있었는데 관리자 묵인 아래 관리자 업무를 보조 및 대행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과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편파적 일처리를 했다. 이 여자에게 찰싹 붙어서 다른 한인들을 은근슬쩍 무시하는 한인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인종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 하면서 다른 한인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게 이런 것이었다. 이런 것도 말이 통하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커지는 경우이다.
미국 회사로서는 처음이었던 항공기 기내식 공급 회사에는 관리직을 제외한 현장직은 퍽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대부분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에 업무상 대화를 할 때에는 영어로 필요한 말만 하고 말았다. 언쟁이라는 것은 말을 이용해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인데 공용어인 영어가 짧다면 그 짧은 영어로 버벅대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서로 물러서고 만다. 그런데 우리말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영어를 고생시키지 않고 우리말로 시원하게 말싸움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이 통하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F로 시작하는 욕설(F-word)을 안다. 형사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등장하는 미국 영화에서는 거의 숨 쉬듯이 하는 욕설이다. 자 그럼 미국에 사는 한인이 영어로 할 수 있는 욕설이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산다고 영어 욕설 종류가 폭발적으로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저 한정된 몇 개의 욕설만 반복한다.
그럼 우리말 욕설은? 우리말 욕설은 영어 욕설에 비할 바 아닐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영어의 F-word에 대응하는 욕설로부터 시작해서 개 등의 동물, 벼락같은 자연현상, 염병 같은 질병에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각 지방의 사투리까지 동원하면 욕설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
다양한 나이의 한인 남자 몇이 함께 일하다 보면 의견 대립이 생긴다. 그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 경어가 사라지고 반말이 등장하며 욕설이 튀어나오게 된다. 만약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라면 짧은 영어 고생시키지 않고 넘어갈 일도 한인끼리는 말이 통하기 때문에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말이 안 통하는 다른 나라 출신 사람과는 안 싸우면서, 말이 통하는 한인과는 싸움을 벌이는 한인… 이런 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었고 이것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한인의 적은 한인’이라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말이 통한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만사 그렇듯이, 나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입사한 지 일 년도 안되어서 이달의 사원(Employee of the Month)에 선정되기도 했으니까. 미국의 상 주는 방식에 대한 얘기는 다음 화요일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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