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관련된 글을 보았다. 캐나다의 밴프 국립공원에서 운전하고 내려오는 길에서 보았던 경관에 감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동감하면서 불현듯 생각난 게 있었다. 약 20년 전 둘째 애가 여름방학 내내 짚고 다니던 목발이었다.
당시 둘째 녀석이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여름으로 기억한다. 여름방학 동안 둘째에게 어떤 활동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 3주 정도 진행하는 여름캠프에 보내기로 했다. 이미 첫째 애도 전에 비슷한 캠프에 보낸 적이 있어서, 둘째가 아직 초등학교의 어린 나이지만 집에서 두어 시간 정도 떨어진 대학교 기숙사에서 머물며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보냈다. 같은 여름방학에 큰 애는 또 다른 곳에서 실시하는 캠프에 가 있었기에 오래간만에 단 몇 주라도 애들 엄마와 함께 조용한 집을 즐길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바로 다음 날로 깨지고 말았다.
둘째의 캠프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그것도 병원으로부터 말이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첫 마디가 놀라지 말라는 소리였다. 둘째가 다른 학생들 몇명과 자유시간에 축구를 했단다. 그리고 한 학생이 둘째로부터 공을 빼앗으려고 태클을 걸어왔다. 그런데 공 대신 발목을 채였다. 덕분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다행히 골절 부분이 성장판은 피해 갔다. 뼈를 맞추고 깁스를 했다.
둘째를 바꿔 달라고 해서 얘기해 보니 별로 아파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거동이 불편하니 빨리 와서 집으로 데려가란다. 그 날 바로는 힘드니 하룻밤만 참자고 했다. 둘째는 알겠다고 했다. 다음 날 캠프가 열리는 학교로 달려 갔다. 물건들을 다 챙겨서 데려오기로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생각만큼 힘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물론 샤워 하기도 불편하고 목발을 하고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둘째에게 집으로 일단 돌아가면 다시 올 수 없으니 기왕 힘든 것 하루만 더 버텨보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란다.
약속대로 다음 날 또 다시 캠프로 찾아 갔다. 하루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목발 짚고 그대로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집으로 가겠느냐고. 가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첫날만큼의 강한 의지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주말에 다시 올 수 있으니 며칠만 더 참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대신 방을 1층으로 옮겨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말에 다시 찾아갔고 또 비슷한 대화를 가졌다. 집에는 언제라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에서만 있어야 한다. 그 보다는 캠프에서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좀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질문 겸 설득을 시도했다. 그리고 나는, 아니 둘째와 나 모두 성공했다. 그렇게 3주의 캠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애들이 캠프를 모두 마친 다음, 방학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가족여행을 그대로 떠나기로 했다. 물론 목발과 휠체어를 가지고 말이다. 애리조나부터 시작해 솔트레이크 시티, 옐로스톤을 거쳐 몬태나 주에 있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국경 넘어 캐나다의 밴프 국립공원이 최종 목표였다. 그런데 예전에 이미 한 번 가 보았던 밴프보다 글래시어 국립공원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좀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저녁 식사 후 가족 모두 산책을 하기로 했다. 숲길을 걷는 것이었다. 곳곳에 ‘곰 주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곰을 만날 경우 조심해야 할 점들이 적혀있었다. 걸으면서 그 점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순간 걷던 산책길 앞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곰 한 마리가 길을 건너다 머리를 돌리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모두 급정거했다. 그리고 누구의 말이 필요치 않았다. 곰 주의 표지판에 적혀 있던 매뉴얼대로 바로 돌아섰다. 뛰지 말라고 했으니 뛰진 않았다. 그러나 걸음 속도가 뛰는 것 이상이 될 수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목발 사용자가 가장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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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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