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략 규탄 서방 단일대오 형성…EU도 우크라 받아들이며 ‘동진’
▶ 튀르키예·헝가리 등 ‘다른 목소리’…서방 단결에 균열 조짐도
▶ 전쟁 피로감, 경제난으로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집권세력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특히 유럽의 정치 지형에 일대 격변을 불러왔다.
러시아의 노골적인 침공은 서방 진영의 일치된 규탄으로 이어졌고 중립국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품에 안김으로써 나토의 동진을 막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그동안 경제동맹의 성격이 더욱 강했던 유럽연합(EU)은 나토 가입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몰도바에 대해서도 신속 가입을 허용해 서방 정치동맹의 색채를 드러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서방의 단일대오가 언제까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일부 국가에서 벌써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경제위기로 주요국 집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 푸틴의 발등 찍은 나토·EU 확대
70년 넘게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중립 노선을 지켜온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만장일치로 찬성한 30개 회원국은 국내 비준 절차를 밟고 있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는 나토와 접한 육지 경계가 약 2배로 늘어나고 발트해는 물론 자신의 앞마당으로 여겼던 북극해에서도 견제를 받게 돼 안보 부담은 훨씬 더 커질 전망이다.
이런 군사적 측면보다 두 나라의 안보정책 노선 변화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더 크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소련과 두 차례 전쟁에서 패배한 뒤 소련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핀란드의 변신은 이 나라가 냉전의 그늘에서 완전히 탈피했음을 보여준다.
나토의 우산 아래 있지 않으면 러시아에 언제든 짓밟힐 수 있다는 두려움은 스웨덴과 핀란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발칸국가 코소보와 보스니아는 친러시아 노선을 표방하는 세르비아가 러시아를 등에 업고 자국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나토에 가입 절차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했다.
주로 경제적 측면의 부담을 우려해 동유럽 개발도상국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던 EU도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와 EU 가입 협상을 개시하며 동쪽으로 외연 확대에 나섰다.
EU가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쏟아내는 각종 제재에는 엄정한 중립 노선을 지켜온 스위스까지 일부 동참하면서 러시아 옥죄기에 힘을 보탰다.
스위스는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자산과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자산을 동결했고, 러시아산 금과 금제품을 구매하거나 수입·운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 서방의 균열 파고드는 러시아
유럽은 모처럼 반러시아 기치 아래 형성된 단일 대오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튀르키예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합류 과정에서 홀로 어깃장을 놨고, 합의에 이른 후에도 두 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테러단체로 간주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 관계자 신병을 인도하고, 무기 수출금지를 해제한다는 조건을 걸고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찬성했다.
나토와 EU에 모두 몸담은 헝가리는 러시아산 원유 금수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에 대한 제재에 반대하는 등 고비마다 EU 제재에 발목을 잡았다.
한때 법치주의 훼손 등으로 EU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폴란드는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난민 수용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독일, 프랑스 위주의 EU 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특히 에너지 수입 중단 문제에 관해서는 EU 회원국들의 처지가 각기 달라 보조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러시아는 EU 내부의 이러한 틈을 파고들 기회를 엿보고 있다. 독일, 폴란드 등 대부분의 국가에 가스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도 친러 행보를 보인 헝가리에는 오히려 공급량을 늘리고 있으며 튀르키예와는 잇따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적극적인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 주요국 국내정치, 우크라이나 여파로 '흔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 주요국들의 정국이 복잡해진 것도 유럽의 단일대오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를 가장 강경하게 비판해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각종 추문에 시달리다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4월 재선에 성공했지만, 6월 총선에서 여당이 하원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국정 주도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정책 노선의 차이가 한 원인이 돼 집권연정이 붕괴하고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사퇴하면서 내각을 새로 구성하게 됐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탈리아가 러시아에 맞서는 서방 진영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물가와 에너지 수급난으로 집권 세력에 대한 지지가 흔들리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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