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수술 후 재활치료를 하고 잘 걷게 되고 정신도 차리고 입맛도 돌아와서 찬찬히 살펴보니 집안 꼬라지가 아주 난장판으로 가관이다. 어느 사이에 모든것이 밖으로 다 나와있는 걸까? 이제는 내 눈에 안 보이면 없는것 같아 곁에 있는 수납장이나 서랍장에 빈 공간이 많은데도 눈앞에 안 보이면 불안하다.
원래의 나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정리 정돈도 잘한다. 성격도 무덤덤하고 단순해서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구석구석 멋지게 늘어놓으며 꾸미질 못하지만 단순하고 여백이 있는 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던 성철 스님의 방석만 덩그러니 놓인 방 사진은 내게는 편안함을 주었고,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던 그분은 어느날 애지중지 하던 몇 개의 난 화분도 집착임을 깨닫고 다 나누어 주시고 등배낭 하나 메고 홀연히 다른 암자로 떠나셨다.
성당에 신부님이 부임해서 오셨을때 가방 2개를 가져오셨는데 가실 때도 가방이 2개뿐인 게 이상했다. 그동안 교우들과 쌓은 추억들이 있는 물건들을 아쉬워서 다 어떻게 두고 가실 수 있을까?
그분들의 욕심없는 삶처럼 텅 비우지는 못해도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안에 집어넣으면 깨끗해보인다는 생각에 우리 집은 집안 살림살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몇년에 한번씩은 나도 언제가 흙으로 돌아갈 거라는 멋있는 생각으로 정리를 해서 그럭저럭 깨끗하게 그렇게 쭉 갈 줄 알았다.
예전에 우리를 예뻐해 주시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깔끔하고 야무진 살림살이가 빛나던 홍 부제님 집은 언제나 반들반들 윤이 났고, 야무진 사모님은 맹탕인 나를 한심해 하면서도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살림살이 꿀팁과 바리바리 챙겨주셨는데 몇 년 뒤에 가보니 웬일이야! 그 비싼 8인용 원목 식탁엔 온갖 약, 우편물, 과자, 고구마, 시든 과일들이 올라와 있다. 알고보니 수술을 하시고 나서는 움직이기 불편하고 귀찮아서 냉장고에는 꼭 필요한 것만 들어가고, 2층에는 올라가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며 거실엔 온돌 침대와 안마의자가 나란히 자리잡았다. 몇년 뒤에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또 몇년 뒤 부제님이 돌아가시고 연락이 왔다.
자기네도 몇개 골랐다며 맘에 드는 살림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한다. 잠시 망설였지만 사양을 하게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텐데 우리는 정리해 줄 자식도 없어서 정말 모든 게 쓰레기가 될게 뻔할테니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리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누군가가 아이고 허리 아파 다리 아파 소리가 들리면 얼마 뒤부터는 사는게 대충 비슷하다. 1층엔 전기장판과 온돌이 깔린 소파겸 침대가 있고 그 옆엔 안마의자와 만능 손발이 되어주는 효자손이 있다. 그 주변엔 이런저런 찜질 방망이와 보다 젊은 날에 사놓은 자전거는 아직도 괜시리 아까워서 남은 못주고 옷걸이로 쓰이다가 어느날 창고로 밀려가거나 몸짱을 만드는데 왜 굳이 새것으로 사려는 아들이나 손자에게 용돈까지 줘가며 물려준다.
그 옆 식탁에는 크기와 상관없이 온갖 것이 올라와 가득하고 식탁 주인은 한구탱이에서 좁혀진 몸으로 구겨져 먹으며 조금 멀리있는 약병은 효자손 등긁게로 당겨서 해결한다. 누군가 가족이 아닌 손님이 온다 하면 모든 것은 여기저기 수납장에 쑤셔놓으니 할머니 집에서는 여기저기 함부로 열어보면 안된다. 자식들이 할머니 살림살이가 정신없다고 정리를 해주려다간 아무리 예쁜 자식이라도 혼나기 일쑤다. 이거다 필요한거라 꺼내어 놓은거다! 내 나름대로 정리가 되있으니 내 살림에 니맘대로 손대지마라.
그래도 젊은 할머니인 내 덕에 아직까지는 정리가 그런대로 돼어 있지만 여기저기 먹으며 흘린 것 치우고 옷 벗은걸 걸으며 나 없으면 어떡할거냐고 남편에게 잘난체하고 잔소리를 하지만, 태어난건 순서가 있지만 가는 건 순서가 없으니 언제 어느날 갑자기 누가 더 엉망진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관 옆 메모지엔 진한 글씨로 가스불 확인, 문단속이라고 써 붙이고도 어느날인가 아침부터 열려있던 현관문을 산책길에 살짝 닫아주었다던 이웃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누구 탓이냐며 서로 잘났다고 못난이 짓을 하다가 그래도 우리 동네는 아직까지는 안전해서 참 좋다며 역시 집값이 높은 게 좋은 거다며 히히 웃으며 아침 신문을 주워 들고 새벽부터 아령을 들고 뜀박질하는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이웃 남자에게도 굿모닝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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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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