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종교에 대해 퍽 관대한 편이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첫 직장이었던 항공기 기내식 공급회사에서 제일 처음 만난 놀라운 광경은 라커룸에서 기도하는 이슬람교인인 무슬림이었다. 라커룸 바닥에 자리를 펴고 절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무슬림을 보았다. ‘아니, 지금은 근무 시간이 아닌가… 근무 시간 중에 일은 안 하고 기도를 드려도 되나?’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각에 기도를 한다. 그 기도하는 시간은 직장에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만약 기도 시간을 보장하지 않으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근무 중 드리는 기도는 후일 다른 직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지인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메카가 있는 방향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기도에 관한 한 매우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여성 무슬림은 천을 둘러서 신체를 가리는데 소속 종파와 출신 지역에 따라 가리는 범위가 달라진다고 한다. ‘히잡’은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스카프 형식이고, ‘차도르’는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망토이고, ‘니캅’은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고, ‘부르카’는 니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눈 부위 조차도 망사로 덮는다. 버지니아 북부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것은 히잡인데 때로는 차도르, 니캅 그리고 드물게 부르카를 한 여성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행동할 정도로 종교에 충실한 사람들이고, 미국은 그런 각자의 종교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서른 안팎 나이의 흑인 요리사가 있었는데 오가며 며칠 살펴보았더니 얼굴이 좀 핼쑥해진 것 같았다. 창고로 식재료를 받으러 왔기에 물어봤다. “어디 아파? 좀 야위었네?” “아냐, 아프지 않아. 지금 라마단 기간 중이라서…” 아… 라마단… 해 뜬 후부터 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그 이슬람교의…
라마단 기간 중에 금식하는 무슬림을 실제로 만난 것이 처음이었기에 내친김에 몇 가지 더 물어봤다. “배고프지 않아?” “배야 고프지.” “배가 고파서 어떻게 사니?” “해가 지면 먹을 수 있어.” “라마단 기간 중에 무슬림은 누구나 다 단식을 해?” “환자, 임산부, 어린이 같은 예외가 있어.” “넌 담배를 피우는데 그럼 지금은 낮에는 담배도 안 피우겠네?” “물론이지.” “물은? 물도 안 마셔?” “응. 안 마셔.” 그와 대화를 마친 후 생각했다. ‘세상에나… 물도 안 마시는구나… 종교란 이런 것이구나…’
기독교의 부활절 부근에는 유대인 승객을 위한 특별한 음식이 제공되었다. 패스오버(Passover) 음식인데 유대교의 절기인 유월절에 맞추어 제공된다. 비행기 탑승 며칠 전에 승객이 이 음식을 요청하면 제공되었다. 이 시기가 아닌 평소에도, 며칠의 시간을 두고,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선택하고 조리한 음식인 코셔(Kosher) 음식을 요청하면 그 또한 제공되었다.
유대교의 명절인 하누카(Hanukkah) 기간 중에 장단기 숙박업소나 유대인이 있는 사무실에서는 특별한 초를 켜기도 한다. 아홉(또는 일곱) 갈래의 촛대에 초를 얹은 것인데 이 촛대를 메노라(Menorah)라고 한다. 가운데 있는 shamash(영어로는 servant) 촛불에서 불을 옮겨 8일 동안 매일 한 개씩 늘여가면서 초를 켠다.
때로 유대인의 상징 육각형 별인 ‘다윗의 별’을 만나기도 하는데 워싱턴 DC의 관문인 유니온역 중앙홀 위 편에 있는 조각상에서도 이 별을 볼 수 있다. 1달러 지폐 뒷면 오른쪽에 있는 미국의 국가문장에서 독수리 머리 위에 별 13개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미국 건국 당시의 13개 주를 뜻한다. 그런데 그 별의 배치에서 다윗의 별이 보이는 것은 과민 반응일까?
다시 기내식 공급 회사 얘기로 돌아가자. 직원에게 공급되는 식사에 관한 얘기다. 그 회사는 직원에게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는데 육류를 사용할 때에는 항상 닭고기만 사용했다. 소고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가끔은 돼지고기 정도는 내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서 닭고기만 제공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워낙 다양한 배경의 직원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므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식재료로 쓸 수 없고 그 결과 어느 종교에서도 금하지 않는 닭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문화를 배워가면서 근무했는데, 한인들 사이에서 문제가 터졌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한인의 적은 한인’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얘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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