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토요일이었다. 내가 졸업한, 그리고 작년에 ‘알렉산드리아 시티 고등학교’로 개명된 ‘티씨 윌리암스 (T.C. Williams) 고등학교’ 출신 동창생의 고별예배에 참석했다. 당일 아침에 늦게 잠에서 깼을 때는 몸도 피곤했고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던 동창이었기에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면 후회할 것 같아 서둘러 준비하고 나섰다.
이 동창은 고교 시절 풋볼과 농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큰 키에 근육질 체격도 우람했다. 플로리다 대학에 풋볼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던 이 동창의 고교 졸업학년 때 우리 학교 농구팀은 28승 무패의 전적으로 버지니아 주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워싱턴 DC 전체 지역에서 사립학교들을 모두 포함해 최강팀으로 랭크되었다. 내 기억으로 나는 거의 모든 게임을 관전했던 것 같다. 주 토너먼트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주말에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열렸는데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 당시 로스쿨에 다니는 친구 형의 아파트에서 머물며 응원했었다.
이 번에 세상을 떠난 동창은 흑인이었는데 고별예배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검 스프링스(Gum Springs)’ 라는 지역에 위치한 한 흑인교회에서 열렸다. 그 지역은 해방된 흑인 노예들과 그 후손들이 1830년대부터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현재도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빈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래된 작은 집들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고별예배가 열린 교회 건물에 사용된 건축자재와 내부 가구들의 모습도 그 지역의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흑인이었던 수백명의 조문객들이 보여준 고인에 대한 아쉬움과 뜨거운 경의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안 조문객은 나 외에 다른 한 명뿐이었다.
그 고별예배에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끈끈한 우정은 미국도 한국에 못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고인은 고교 시절 스타 운동 선수였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수도 있다. 나처럼 개인적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별예배 참석을 위해 멀리서부터 와 준 친구들, 특히 백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정은 인종적 경계가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예배당에서 우연히 나와 같은 줄에 앉게 된 백인 동창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그 동창 사이에 연세가 지긋한 백인 노인 두 명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배 중 간간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 내는 이 두 노인들이 누구일까 자못 궁금했다. 나중에 그 동창에게 물어 보니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이라고 했다. 연세가 적어도 90정도는 되어 보였던 두 노인은 모두 타주에 거주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아들과 조카의 고등학교 풋볼 팀메이트의 고별예배에 참석하신 것이다. 고등학교 때 고인과 이 동창이 과연 얼마나 친했으면 그럴까 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내가 다녔을 당시의 T.C. 윌리암스 고등학교에는 두 학년, 즉 11학년과 12학년 학생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팀메이트라고 해도 아래 위로 1년 씩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팀메이트들이 더욱 가까웠는지 모른다. 고별예배 후 인근의 커뮤니티 센터에서 리셉션이 열렸다. 그 곳에서 흑인들의 모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닭튀김과 생선튀김 등을 같이 나누면서 45년 전 학창 시절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미국인 동창들 모습에 진한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잘 몰랐던 동창들과의 대화에 스스럼 없이 끼어드는 나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인가 보다 싶었다.
리셉션 후 고교 때 학생회장이었던 백인 친구를 그의 어머니가 사는 곳으로 라이드를 주게 되었다. 차 안에서 언젠가 우리도 모두 죽을 것이라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 먼저 죽을 확률이 높은데 내 고별예배에 아무리 바빠도 오라고 초청했다. 그랬더니 고별예배 때 자기가 인사 한 마디 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물론이지, 친구야. 꼭, 꼭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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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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