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감소 고려해 낮춰야” vs “발달단계 안맞고 경쟁 심해져”
▶ 시행하려면 초중등교육법 개정해야…여소야대 정국서 난항 예상
▶ ‘만5세 취학저지 범국민 연대’, 내일 철회 요구 기자회견
지난해 3월2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진행된 입학식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육부가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한국나이 7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전격 발표하면서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2025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76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학제가 바뀌게 된다.
교육부는 앞으로 대국민 토론회,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공감대를 이뤄나가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대통령 공약에도 없던 학제개편 이슈가 갑자기 등장한 데 대한 학부모 반발이 큰데다, 기본적으로 학제개편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국회 통과가 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초등 입학연령 갑자기 낮추려는 이유는
31일(한국시간) 교육계에 따르면 초등 입학연령을 낮추는 학제개편안은 역대 정부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언급했던 정책이다. 노동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취학연령 하향으로 장기적으로는 입직연령(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나이), 결혼 및 출산연령 등까지 전체적으로 앞당기자는 취지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는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의무교육 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겨 교육과 돌봄의 격차를 줄이고, 어린이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적기'에 '동등'하게 제공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가(성인기에 비해)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취학연령 하향은)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또 예전보다 아이들의 지적 능력이 높아지고 전달 기간도 빨라져 현재 12년간의 교육 내용이 10년 정도면 충분하다고도 설명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전 대구교육감)은 "시행하는 데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입직 연령을 낮추기 위해 취학 연령을 낮추는 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교육 시대이고 지식 정보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데 중등교육·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너무 오래 잡아두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교사·교실 문제부터 사교육·돌봄·입시 영향까지…우려 분출
그러나 관련단체와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훨씬 더 우세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학제 개편은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 수급의 대폭 확대, 교실 확충,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입시, 취업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등 이해관계의 충돌·갈등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지금도 1년 일찍 입학할 수 있다"며 "하지만 2009년 9천707명이던 조기 입학은 2021년 537명으로 감소했다. 한 살 많은 형이나 언니들과 함께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취학연령 하향 조정은 산업 인력 공급 차원에서 이야기되곤 했지만, 특정 연령의 교육적·경제적 피해와 손실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많은 공립초등학교가 오후 1시 전후로 저학년 학생들을 하교시키는 상황에서 더 어린 연령을 초등학교로 편입시키면 맞벌이 가정 등의 돌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초등학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 체계가 유치원에 비해 미흡하다"며 "초등학교에 돌봄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돌봄서비스를 준비 없이 급하게 초등학교에서 떠넘기듯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청소년들을 직업 전선에 1년이라도 빨리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시장과 기업의 가치에 매몰된 국정운영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령별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교육 환경과 이에 적응하지 못해 받게 될 아이들의 교육적 부작용,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학부모들이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을 본격적인 학습의 시기로 인지해 조기 취학에 대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더 이른 시기인 영유아 단계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해 과잉 사교육 열풍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의 단체는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를 결성하고 다음 달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 사회적 합의될까…법 개정부터 난항 예상
학제개편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사립 유치원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교육 현장과 실질적인 이용자인 학부모, 예비교사를 대상으로 한 정교하고 지속적인 의견 수렴 과정과 연구 과정 없이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을 느닷없이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 5세 유아는 전체 유치원 유아의 40∼5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치원의 주요 교육 대상"이라며 "강경 추진한다면 정권 초기의 엉뚱하고 다급한 발상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5세 아이들의 지적 발달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이 심화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유치원 등의 반발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곧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전문가 집단이 아동 발달단계의 특징과 교육과정 등을 고려해서 연착륙 시스템을 만들어야 학부모 불안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학제개편을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거센 여론 반발을 뚫고 개정안을 통과시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취학 의무를 정해둔 제13조에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3월 1일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현재 '5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또는 7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에 취학할 수 있다고도 정해둬 1년 조기 취학과 취학 유예가 모두 가능하도록 돼 있는데, 5세 입학을 이런 선택이 아닌 의무 사항으로 바꿔야 한다.
전교조는 "학제개편은 학부모, 유아교육계, 초등교육계와 여러 차례에 걸쳐 의논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세심하게 다가가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며 "그런 중요한 정책을 즉자적으로 세워 강행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아와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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