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한인회의 한사랑종합학교에서 ‘취업을 위한 이력서 작성 및 인터뷰 대비’를 지도해준 박 선생님의 권유로 워싱턴 DC의 하늘 관문인 덜레스 공항 옆에 있는 기내식 공급 회사를 찾아갔다. 덜레스 공항에 취항하는 국내 및 국제 항공사에 항공기 승객들이 비행기 안에서 먹는 음식을 공급하는 회사였다.
박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작성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인사 담당자가 회사 양식을 건네주어서 그 양식에 다시 적었다. 그 회사의 지원서 양식에는 레퍼런스(reference) 두 사람을 적어내게 되어있었다. 이 ‘레퍼런스’라는 단어는 보통 ‘신원보증인’이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신원보증인을 요구하는 것은 채용한 사람이 후일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즉 회사에 끼친 손실에 대해 근무자가 갚을 능력이 없을 때에는 신원보증인에게 변상을 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신원보증서에는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보증하는지가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보증의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신원보증인의 서명 날인이 있다.
그런데 레퍼런스는 보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증이 아니기 때문에 입사지원자가 취업 후 근무 중에 금전사고 등 제반 사고를 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레퍼런스는, 입사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회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입사지원자를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성실성 등에 대한 질문에 응답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레퍼런스는 그 취업한 사람이 회사에 손실을 끼칠 경우에 변상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입사지원자가 레퍼런스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본인과의 관계를 회사에 알려주는 것으로 끝이다. 보증인과 달리 레퍼런스가 회사에 제출하는 서면은 없다.
미국 땅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다만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기에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부탁 드려서 허락을 받아 두었다. 그리고 교인 중에 국민학생 때 부모님 따라 이민 와서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애기 엄마가 있어서 그에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 두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어떤 관계인지 적어냈다. 회사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을 그 회사에 취업한 후에 들었다. 레퍼런스를 형식적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다른 일로 인사과에 들렀다가 인사 담당 직원이 어떤 양식 한 장을 앞에 놓고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레퍼런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 양식에는 질문 사항이 미리 적혀 있어서 담당자는 그 질문을 한 후 대답을 그 양식에 적어 넣고 있었다. 출근시각 등 약속을 잘 지키는지,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지, 제반 규정을 잘 지키는지, 주어진 업무는 성실하게 잘 해내는지 등을 물어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입사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후일 보안이 강화되면서 직원들은 연방수사국(FBI)의 신원조회를 거쳐야 했다. 그 회사에서 준비한 음식물이 공항에 반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혹 있을지 모르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함인 것이리라.
생애 첫 직장이 아니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라면 직전 직장의 상급 관리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내게 된다. 다만 직전 직장에 전화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칸이 있어서 지원자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직전 직장에 조회하지는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직전 직장에 연락을 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지원자가 이전 직장에서 지각이 잦고 수시로 무단결근하고 직장 근무규정을 위반한 적이 많았다면 채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모든 직장의 관리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인사담당자나 관리책임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때에도 좋은 얼굴로 헤어져야 한다. 새로운 직장에서 이전 직장에 조회를 했을 때 좋지 않은 정보가 그대로 전달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느닷없이 직장을 때려치운 사람이 있다고 하자. 새로운 직장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새 직장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채용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가수 주현미의 ‘잠깐만’이라는 노래에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는 가사가 있는데 이것은 회사를 그만둘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중에 전직할 경우를 생각한다면 입사할 때보다 퇴사할 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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