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신 중동순방 평가…세계정세 급변에 떼밀린 선택지
▶ 원유증산 등 당장 가시적 성과 없어 ‘빈손 순방’ 혹평도
걸프협력회의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 [로이터=사진제공]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이 16일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순방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초조한 속내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를 억제하고 중국을 압도하는 게 더 큰 목표라면 불쾌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는 독재자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배경을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동이 대표적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오랜 동맹이자 중동의 반미국가인 이란을 봉쇄할 중심축으로 통했다.
그러나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요원들에게 살해된 뒤 관계가 얼어붙었다.
미 정보 당국은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했고,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남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에너지 위기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 생산량 조절로 국제유가를 움직일 수 있는 사우디를 찾아야 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전비 충당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원유수출 차단을 압박하지만 그 때문에 공급감소로 국제유가가 더 치솟을 수 있다.
유가상승은 에너지 수익을 불려 러시아를 오히려 이롭게 할 수 있으며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악화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 원유 증산의 여력이 있다고 판단된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NYT는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아랍국에 친화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짚었다.
중국은 간판 다국적기업 가운데 하나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필두로 중동에서 꾸준히 자국 5G 및 6G 정보통신망을 늘리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자국 정보통신 기술이 중국보다 뒤졌다고 보고 중국이 주요 미래 기간산업에서 글로벌 표준을 점유할 가능성에 속을 태워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통해 기밀을 빼돌린다고 주장하며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통신업체와 계약하는 아랍국의 군사동맹 참여를 안보를 위해 제한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일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해 이번 방문의 방점이 중국과 러시아 견제에 있다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세계가 더 경쟁적으로 변하고 우리가 직면한 난제가 더 어려워지면서 중동이 미국의 국익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동을 떠나 중국, 러시아, 이란이 그 공백을 채우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적이고 원칙 있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중동 지역 내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의지를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중동의 대표적 독재자 가운데 하나로 거센 반체제 인사를 겨냥한 인권탄압 비판을 받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엘시시 대통령을 일절 비판을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원한 데 감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순방은 중국, 러시아 견제를 위해 소신을 꺾는 중장기 목표가 이처럼 관측되지만 당장 모양새를 보면 가시적 성과가 없어 혹평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주먹 인사'로 관계개선에는 첫발을 내디뎠지만 큰 성과가 없어 방문할 가치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무함마드 왕세자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냉랭한 관계 여파로 고립됐던 외교무대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순방에서 성과를 냈는지 평가받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문가를 인용해 분석했다.
특히 급한 현안으로 꼽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증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어 오히려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지적도 일부 있다.
오히려 사우디 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원유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OPEC 플러스'(OPEC+)가 시장 상황을 평가해 적절한 생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OPEC+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산유국들이 모여 원유 생산량을 담합하는 협의체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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