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환갑이 넘을 때까지도 어머님은 사진 한장이 변변이 없었다. 50넘어서 당뇨 때문이었던지 땡볕에 그을려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쇠해 보이셨다. 어느날 부모님께 버스로 올라 오시라고 했다. 대소사도 없는데 그냥 올라오라는 큰 아들의 대도시 초대에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게, ‘아들이 불러서 올라갑니다.’ 동네분들에게는 으쓱(?)대며 올라오셨을 듯 하다.
자랑거리도 없는 집안이지만 특히 자식자랑은 입에도 안 올린다고 하셔서 동네 한가운데 집 우리 형제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모르는 동네분들이 아직도 계실 것으로 알고 있다. 땀을 씻겨드리고 시내의 사진관으로 갔다. 그제서야 아시는 듯 하다.
그렇게 찍었던 사진은 그 후 17년 뒤, 24년 후에 두분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영정 사진 속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은 돌아가실 때에 비해서 훨씬 싱그럽다.
이제는 내 나이가 이미 그 나이를 더 지나버렸다. 어느날, 어머님이 ‘ 너희들이 살만하니까, 내가 늙어 버렸다.’ 하셨다. 10년만 더 젊으셨으면… 할때가 있었다. ‘사람을 나이나 겉모습으로 보지 말거라. 늙은 나를 대하듯이 보면 세상 못난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고 덧붙이셨던 그런 어머님에게서는 밉고 곱고가 따로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 특히 연세있는 여성을 대할때마다 습관적으로 20세 더 젊은 모습으로 바꿔서 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곱고도 젊어 보였다.
아주 착한(?) 대학 친구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여학생에게 먼저 말을 걸줄도 모르는 순둥이였다. 졸업시즌에 각종 취직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졌다. 우리는 늘상 곁에서 지켜봐서 몰랐지만 그 친구는 군대 휴가때에도 헌병들이 여러 명 중에서 유독 그 친구만 검색을 하더란다. 그랬다. 미간이 좁고 인상이 강렬했다. 그런 걸 보면서 별로 호감가는 얼굴이 못되고 생긴대로 살자 했던 나도 그때부터는 사람들에게 좀 더 선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남녀간의 시력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특장(特長)들이 있다. 남편이 아침에 대문밖에 놓인 신문을 가지러 나가면 신문만 들고 바로 들어 온다.
부인이라면 아기 신발 한짝이 없어진것, 마당에 떨어진 휴지, 우물가 수도꼭지 물 흐르는 것, 담장 밑에 숨어있는 도둑고양이, 이웃집에 요리냄새까지 다 기억하고 들어와서 남편에게 아기 신발 한 짝, 휴지는 왜 안줍고, 수도꼭지도 안잠그고, 고양이 봤어? 하고 묻고 따진다.
남자가 그런걸 볼 경황이면 정작 신문을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와이프와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가끔씩 ‘똑바로 가세요’라고 조용하고 나직이 말한다. 다른 여자 쳐다보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여자의 시각’은 270도라고 한다. ‘남자는 45도도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선’이라고 하는듯 하다. 밖에 나갈 때 화장하는 와이프와 그런 화장을 하는 다른 여성들, 와이프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며, 그런 여성을 쳐다보게 되는 남자들, 그 이중적 심리를 나이 60이 훨씬 지나도록 확실한 구분을 못하고 있는 나같은 뭇남성들은 무척 혼돈스럽다.
특히 남자들은 여름철에 밖에 나가면 눈 둘 곳이 없다. 천정을 쳐다보거나 외면하면 무시하냐고 따진다.
지난 5월에 택사스 달라스에서는 민주 평통 세계여성 컨퍼런스가 열렸다. 그 날 연설의 대부분이 여성주제였다. 여성특유의 섬세함, 자상함, 편안함 등이 물씬 진동하는 걸출한 회의였다. 여성들끼리 더 잘할 수 있는 남북한의 통일방안,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세세한 방법과 가능성들을 발표, 논의하고, 박수치고 웃고 돌아왔다.
그 중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띄는 것은 행사장을 뒤덮은 ‘핑크색 칼라’였다. 무대장식, 화면, 브로셔, 복장, 테이블 등등, 그것은 행사장을 평화와 환희가 넘치도록 했다. 남자들 눈에는 두고두고 오래 기억 될 색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남성이 전혀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물론 그런 생각을 그 당시에는 못해봤다.
남녀 문제도 굉장히 분화되고 복잡해졌다. 조화가 중요한 지점이다. 전혀 별개여서는 인류가 망한다. 남북도 일도양단(一刀兩斷)이면 공멸이다.
그러고 보니 남북문제도 남녀문제와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인다. 세계가 시끄럽고 어지럽다. 남북문제라도 조용했으면 하는 여름이다. 남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여성들의 넓은 시각으로 감싸안아 주는, ‘그런 세상은 요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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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위싱턴 평통회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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