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니쉬로 ‘쁠라따’(Plata)는, 은( 銀) 곧 돈을 의미한다. 쁠로모(Plomo)는 납(鉛), 총탄을 의미한다. 마약 카르텔을 확장하면서 라이벌 마약 조직은 물론, 정치인, 각료, 군 경찰, 언론인, 미국 DEA 요원까지 닥치는 대로 포섭하거나 제거할 때 걸었던 슬로건이 ‘쁠라따 오 쁠로모’ 이다. ‘주는 돈 먹고 포섭될래 아니면 총탄 맞고 죽을래….’ 양자 택일을 촉구하는 말이 섬뜩하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콜롬비아 메데인(Medellin)의 마약 왕 빠블로 에스꼬바르(Pablo Escobar)의 잔인했던 실화를 기초로 만든 영화가 ‘파라다이스 로스트’ (Paradise Lost)다. 콜롬비아와 미국의 공권력은 그를 ‘공공의 적’으로, 가난한 콜롬비아노들은 로빈 후드같은 ‘기부천사’라 불렀다.
에스꼬바르 역을 맡았던 베니치오 델 또로(Benicio Del Toro)의 연기를 통해 인간 내면 속에 숨겨진 야수적 잔인함과 죄를 속죄 받으려는 듯 빈자와 약자들에겐 따뜻한 기부 천사로 돌변하는 이중성의 모호함을 다뤘다.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를 파멸로 떨어뜨리면서 벌어들인 마약 대금은 일만 악의 뿌리에 불과했다. 영혼의 안식처에서 축출 당한 인간들의 원초적인 죄와 벌, 그리고 비극적인 악의 결말을 보는 듯하여 진한 여운을 남긴다.
콜롬비아의 두번째 도시 메데인은 해발 1500 m 고원지대로 연중 섭씨 20도를 유지하는 쾌적한 곳이다. 본래 그곳은 꽃, 섬유, 의류 사업이 활발 했었지만 점차 금, 보석 등 사치품을 밀수하는 곳으로 변모되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빠블로 에스꼬바르도 절도와 밀수로 잔뼈가 굵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반전 운동과 히피의 등장으로 마리화나 수요가 급증하자 메데인은 마약 수출 전진기지로 변모한다. 25세의 예비 마약왕 에스꼬바르도 공권력을 매수하여 마약 운반에 수완을 발휘했고 서서히 장악력을 키워갔다. 이후 코카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천문학적인 달러가 유입되자 군소 마약 조직들을 통합하여 마약 제조, 운반, 판매를 극대화 시킬 ‘카르텔’을 조직한다. 잔인한 살해자 호세 가차, 밀매 네트워크를 갖춘 오초아 패밀리, 영어 소통이 자유로우면서 인맥이 두터웠던 까를로스 레데르가 운반을 맡으면서 사악한 코카인 왕국이 탄생했고, 메데인 카르텔은 인류 사회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비즈니스를 쥐락펴락 하는 흑암의 제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코카인 밀매로 매일 50만달러씩 벌어들였다. 89년엔 250억 달러를 축적하여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갑부 7위에 올랐다. 자상한 기부천사 처럼 흠뻑 미소를 머금고 병원을 지어 환자들을 돌봤다. 축구장을 만들어 운동을 권장했고, 사설 동물원을 지어 아프리카 동물들로 가득 채웠다. 빈민 가족 1000명에게 무상 주택을 제공했고, 일간 신문 재정 후원자, 약자와 빈자들의 먹거리를 공급하는 수호천사로 추앙을 받기에 이른다.
선심공세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콜롬비아노들은 에스꼬바르를 자유당 선량(選良)으로 선출했다. 그의 범죄행위를 추적하던 법무부 장관이 그의 부정 선거와 마약 밀매 대금 유입을 지적하자 순식간에 잔인한 살인마로 돌변했다. 법무부 장관과 해당 폭로 기사를 게재한 유력 일간지 ‘에스페따도르’ (Espectador) 의 편집장을 살해했고, 신문사 사옥에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대통령 후보 4명 암살, 여객기 폭파로 100여명 살해, 연쇄 폭탄 테러로 400여명 살해, 한 해에만 3500명을 살해했다. 쁠라따(돈)와 쁠로모(총탄)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콜롬비아 대통령까지 꿈꾸던 마약왕이 라이벌 칼리 카르텔 조직원들의 총탄에 맥없이 쓰러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은 결코 편안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알려졌던 수도권 워싱턴지역에서 빈발하는 흉악범죄와 총격사건은. 가뜩이나 상심한 시민들의 마음을 앙앙불락(怏怏不樂) 하게 만든다.
(도시선교: 703-622-2559 / jeu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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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억 / 목사 굿스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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