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butterbur, sweet-coltsfoot)는 머우, 머구, 머웃대로 불리기도 하며,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온대와 아한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한국의 어느 곳이든지 햇볕이 잘 드는 산비탈의 숲이나 골짜기 주변의 물기가 많은 흙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말은 공평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머위가 넓고 넓은 미국 땅에는 없다. 그러나 북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여러 한인집 텃밭에는 머위가 자라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내가 이민 오기 전인 약 45년 전, 전라북도 전주시에 사시는 장모님이 매년 꼭 한 번씩 메릴랜드 포토맥에 사는 큰 따님 집을 방문했다. 그때 미국에는 머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머위 뿌리 몇 개를 구해서 포토맥 집 텃밭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서 머위 재배의 효시이다. 건강에 좋은 쌉쌀한 고향의 머위가 자식들 입에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텃밭에 머위를 심어 텃밭을 완전 초록으로 덮어 놓았다.
무성하게 번식한 그곳 머위밭에서 뿌리를 여러 개 가져와 페어팩스(FAIRFAX)에 있는 우리집 텃밭에 심었다. 머위는 다년생 식물로 생명력이 매우 강해 번식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병충해에도 강해 농약을 칠 일도 없다.
2~3년 지나자 다른 농작물을 심을 수 없을 정도로 집 텃밭이 온통 머위밭이 돼버렸다. 텃밭을 정리하기 위하여 머위 뿌리를 몽땅 캔 후 큰 박스에 담아 가서 30여명이 모인 산악회 회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약 15년 전 이야기이다. 그 뿌리가 이 집 저 집으로 세포 분열되어 페어팩스의 텃밭 가꾸는 많은 한인집에서 머위를 볼 수 있게 됐다.
그 머위가 퍼지고 퍼져 위로는 뉴욕주까지 아래로는 사우스 캐롤나이나주 까지 퍼져 있음을 알았다. 본의 아니게 ‘페어팩스 머위 원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는 어떤 지인은 나에게 머위 자랑을 하면서 분양 받아 재배해 보라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 지구가 돌고 돌 듯 머위도 돌고 돌아 원조에게 다시 온단 말인가?
머위의 속명인 페타시테스(Petasites)는 그리스어로서 챙이 넓은 모자라는 뜻으로, 머위가 큰 잎을 갖는 데서 유래되었다. 일본에서는 후끼(ふき)라고 하여 산채 중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애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봉두채(蜂斗菜), 또는 사두초(蛇頭草)라고 부르며 나물로 이용하고 있다.
머위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지켜낸 뿌리에서 여린 줄기가 초록 잎을 거느리며 이른 봄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머위는 쑥보다 먼저 나온다.
머위는 쓰다. 어린 잎도 쓰다. 머위는 입안을 쓴맛으로 가둔다. 그렇지만 머위는 쓴맛으로 먹는다. 머위는 약간 쓴맛이 있으면서도 특유의 향를 갖고 있어 향기나 효능 등에 있어서 한국 토종 허브 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입에 쓴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다. 쓴 물질이 위 속의 쓴맛 수용체와 결합했을 때 식욕촉진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진다. 그 쓴맛을 기억하며 사람들은 머위를 먹는다. 그 쓴맛이 집나간 입맛도 찾아오게 한다. 씁쓰름한 머위를 실컷 먹고 나면 봄 한 철이 지나간다. 우리가 먹은 쓴맛의 머위, 제철에 먹어둔 쓴맛의 머위가 한 해를 건강하고 힘 있게 건너갈 수 있도록 위안을 주는 음식이다.
머위는 이른 봄인 3월 초쯤에 꽃을 피운다. 꽃부터 줄기, 잎, 뿌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 머위의 강한 쓴맛은 물에 데쳐도 특유의 쌉쌀한 향이 살아있다. 줄기와 잎은 데친 후 찬물에 우려서 먹어야 쓴맛이 덜하다. 꽃은 덩어리째 떼어 튀김을 해 먹으면 별미로 즐길 수 있다. 뿌리는 주로 약용으로 쓰인다.
전라북도 향토 음식으로 ‘머위대 들깨탕’이 있다. 머위는 머위대 들깨탕으로 정점을 찍는다. 머위대는 매년 2~3회 잘라서 ‘머위대 들깨탕’을 해먹을 수 있다. 머위대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삼아 들깨가루와 불린 맵쌀에 준비한 양념을 넣고 들기름에 볶고 끓여주면 완성된다.
멸치와 건새우, 말린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낸 육수에 머위대와 찧은 마늘, 불린 쌀가루와 들깨가루를 넉넉하게 넣고 끓이다가 붉은 고추와 대파로 고명 올리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완성한 머위대 들깨탕. 전주 출신 장모님이 미국에서 사는 자식들에게 고향 음식을 해주고 싶었던 속 깊은 사랑의 음식이 머위대 들깨탕 이었을 거다.
머위의 효능은 다양하다. 머위는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베타카로틴 성분은 나트륨을 배출시킨다고 한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 당뇨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남녀노소 다 즐겨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뜨거운 태양의 사랑으로 집 텃밭에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머위가 보약이고 보물이다. 장모님의 깊은 뜻을 생각하면서 금년들어 첫 번째 머위대 들깨탕을 끓여서 먹어야겠다. 장모님의 깊은 사랑에 다시 한 번 결초보은(結草報恩)하고 백골난망(白骨難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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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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