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31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라스베가스 인터내셔널 호텔 공연 실황은 언제봐도 감탄스럽다. ‘펠비스’(Pelvis·골반) 엘비스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대중음악 칼럼니스트가 즐겨 인용하는 ‘TV카메라가 엘비스 허리 아래를 비추지 않는 이유’를 끄덕이게 된다. 42세로 요절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를 세상에 안겨준 매니저 톰 파커 대령의 시선에서 재구성된 영화 ‘엘비스’(Elvis)가 바즈 루어만 감독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를 오스카 8개 부문 후보에 올렸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감각적 연출은 할리웃 신예 오스틴 버틀러와 명배우 톰 행크스를 만나 2시간49분의 긴 상영시간을 볼거리로 채운다.
무명 신인 엘비스가 스타덤에 오른 1956년 TV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을 때 카메라가 그의 허리 아래를 비추지 않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당시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요란한 허리 움직임에 시청자들이 반감을 표할까 두려워서였다. 백인인데 흑인 음악을 하는 엘비스를 발탁한 매니저는 네덜란드 이민자 톰 파커 대령이었다. 서커스 카니발의 영리한 사기꾼이었는데 자신을 ‘스노우맨’이라 칭하며 ‘스노우맨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라는 사교 클럽을 창설해 운영했다. 루이지애나 주지사 지미 데이비스의 캠페인을 도운 댓가로 명예 계급장인 ‘대령’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쇼맨이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이 톰 파커 대령역으로 외관상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는 할리웃 스타 톰 행크스를 일찌감치 낙점했는데 캐스팅 비화가 있다. 루어만 감독은 톰 행크스에게 엘비스 영화 이야기를 하자며 만남을 요청했다. 톰 행크스는 시간 낭비라 생각하며 그 자리에 나갔고 대뜸 ‘톰 파커 대령이 없었으면 엘비스가 없었다’는 말을 꺼낸 루어만 감독에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없었다면 톰 파커 대령은 없었다”고 응수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스타이지만 톰 파커 대령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 자리에서 톰 파커 대령이 얼마나 위대한 협잡꾼인지 지치지 않고 떠들어대는 루어만 감독에게 7분 만에 출연 수락을 하며 사진이나 보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톰 행크스는 촬영장에 출근하며 매일 5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받아 대머리를 중절모로 감춘 턱이 없는 배불뚝이 톰 파커 대령이 되었다.
워낙 유머가 넘치는 행크스였기에 귀가 따갑도록 칭송하는 루어만 감독의 수완에 넘어간 것으로 들리겠지만 그가 수락한 이유는 분명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재능을 지닌 엘비스가 행사할 대중 문화의 힘을 내다본 유일한 존재가 톰 파커 대령이라는 루어만 감독의 한 마디였다.
어린 시절 기타 밖에 사줄 수 없는 가난한 부모 슬하에 성장한 엘비스는 가스펠 예배에 잠입했다가 신들린 듯 흑인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트럭 운전사로 돈을 벌던 그는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멤피스 레코딩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음반 데뷔를 했다. 블루스 흑인음악을 하는 열아홉살 백인 청년의 공연장에 들어선 톰 파커 대령은 엘비스의 요란한 허리 아래 움직임은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의 빨려들어가는 표정만 주시했다. 흑백 분리를 당연시하던 시대, 인종차별법이 철폐되기 전 엘비스 프레슬리가 음악을 통해 장벽을 허물었다. 톰 파커 대령이 1956년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은 아직까지 회자되는 인용구이다. 엘비스를 데리고 무슨 마법을 부린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난해 내 아이(엘비스)는 백만 달러 가치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그 아이의 주머니에는 백만 달러가 있다.”
그래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카메라는 엘비스보다 톰 파커 대령에 더 오래, 길게 머문다. 루어만 감독은 1950~70년대 미국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당시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엘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외 미래를 위해 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돈과 삶이 충돌한 엘비스의 인생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함의가 있다고 느꼈다”며 “영화를 연출하면서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 간의 관계’에 천착한 데는 이유가 있다. 톰 파커가 엘비스를 발명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나. 어린 엘비스를 보고 상업적인 잠재력을 눈여겨 본 것이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오스틴 버틀러의 연기는 후반부에 가서야 자연스럽게 실제 엘비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마지막 공연 장면은 MGM 영화사가 5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담은 1970년 공연실황(Elvis: Thats the Way It Is) 속 엘비스 프레슬리와 오스틴 버틀러의 목소리를 섞은 것이다. 루어만 감독은 이 영화에 엘비스가 좋아하는 ‘만화’ 컷을 집어넣고 ‘엘비스 온 투어’ 다큐멘터리의 화면 분할 편집도 살려냈다. 라스베가스에서 유행해온 약식 결혼식에 ‘엘비스 웨딩’이 왜 인기를 끌었는지 ‘러브 미 텐더’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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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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