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지난 24일 연방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이 나온 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던진 질문이다. 필자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이 광명한 문명국에서 어두운 변방국가로 이동하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지난 30년간 필자는 기회주의, 광신, 허위, 욕정, 위선과 비겁으로 얼룩진 우울한 일련의 사건을 목격했다. 이 글은 자신이 얻을 지위의 가치에 비해 하찮기 그지없는 ‘여성의 권리’를 내던짐으로써 권력을 얻은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은 케네벙크포트에 있는 조지 H.W. 부시의 별장에서 시작됐다. 햇빛을 튕겨내는 바다가 눈부시게 빛나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여름날, 필자는 백악관 출입기자로 현장에서 취재 중이었다. 그날 조지 H.W 부시는 43세의 연방고등법원 판사를 은퇴하는 서굿 마셜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클레런스 토마스 판사는 자신의 대법관 지명을 발표하는 부시 대통령의 옆에 다소 거북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지명 발표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온갖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하워드 메첸바움 상원의원(민주. 오하이오)은 토마스 판사의 낙태관련 판결 기록부터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준과정에서 여성의 선택권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일단 대법원에 들어가면 낙태권을 폐기하려 아우성을 치는 또 한 명의 레이건-부시 지명자를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는 진보진영의 걸출한 대변자이자 민권의 수호자인 마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기여한 어퍼머티브 액션(소수계 우대법)에 반대했고, 반낙태 행동주의자들의 수호자 행세를 했다. 하지만 우파가 좀처럼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자 재선을 의식한 부시는 극보수 성향의 토마스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이어 3개월 후 열린 대법관 지명자 인준청문회에서 아니타 힐은 상관인 토마스가 수시로 추근대고, 그가 즐겨보는 포르노 영화에 관한 음란한 이야기를 하는 등 그녀에게 성적 괴롭힘을 가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인준청문회를 주재한 상원 법사위 위원장은 조 바이든이었다. 바이든은 공화당의원들이 그녀를 무참하게 찢어놓도록 방치했고, 갑자기 청문회를 중단했으며, 아니타 힐의 증언을 뒷받침해줄 증인 두 명의 출석을 취소했다. 백인 일색인 상원 법사위 소속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둘의 관계를 어그러진 직장 로맨스 정도로 여겼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전 여친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의 인생을 갈가리 찢어놓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흑인 여성인 힐은 위증을 한 색정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바이든은 민주당 의원들이 법사위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거짓말쟁이에 변태이자 성희롱자가 종신 대법관으로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을 허용했다.
결국 토마스가 대법관에 임명됨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은 최초의 급진적 우익 법관이라는 강력한 지원군을 얻게 됐다. 이어 충격적인 성적이탈 역사를 지닌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공화당과 보수 종교인들은 가정의 가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보수진영은 트럼프야말로 그들에게 마법의 칼을 가져다 줄 극우 전사임을 알아차렸다.
미치 매코널과 그의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 하수인들은 트럼프를 그들의 숙주로 사용했다. 버락 오바마가 지명한 메릭 갈랜드의 대법관 인준을 막기 위해 룰마저 깨뜨렸던 매코널은 트럼프가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바렛의 상원 인준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트럼프는 한때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고, 낸시-힐러리-척을 사랑하는 민주당원이었지만 반낙태 유권자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꺼이 입장을 바꿨다. 여성의 권리는 트럼프의 에고와 야망에 치여 뒷전으로 밀렸고, 정부의 손을 거둬들여 낙태권을 필요로 하거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매코널의 욕심도 힘을 보탰다. 트럼프와 매코널이 합작해 대법원으로 보낸 세 명의 법관은 결국 로우 판결을 폐기한 주역이 되었다.
닐 고서치와 역시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버노는 현재 민주당 상원의원들로부터 대법관이 되기 위해 인준 청문회에서 낙태권 폐기 의도를 감추는 등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 후이스 기자에 따르면 캐버노는 인준 청문회 당시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에게 “나는 보트를 흔드는 타입의 판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사무엘 앨리토의 다수의견에 대한 토마스의 보충의견은 낙태권 폐기에 적용된 동일한 논리를 피임,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사이의 성관계에도 적용하겠다는 소름끼치는 경고를 담고 있다.
과거 토마스의 지명이 저항에 부딪히자 부시 행정부는 그를 불우했던 성장기의 어려움을 자력으로 극복한 흑인 남성의 표본으로 띄워 올렸다. 케네벙크포트에서 부시의 대법관 지명발표가 있던 날, 토마스는 조지아 벽촌 소작인이었던 조부모 밑에서 자란 과거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대법관이 된 후 그는 빈민과 사회·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에 고통을 안겨주는 의견을 속속 내놓았다. 그의 백인 아내가 트럼프의 쿠데타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 토마스는 대법원에서 열혈 우익 극단주의 대법관들의 쿠데타를 이끌었다.
지난 목요일, 총기난사 돌림병의 한 가운데서 의회가 마침내 온건한 총기규제법을 통과시켰지만 토마스는 뉴욕주의 공공장소 총기휴대 규제법을 뒤집는 다수의견을 썼다. 지난주 대법관들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제 1차 수정헌법조항을 약화시키는 판결도 내놓았다. 이제 그들은 환경보호법과 정부의 기업규제 권한을 무력화하거나 아예 제거하려 들 것이다.
현재 대법원은 통제불능의 상태고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클레런스 토마스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멋대로 지시하는 무책임한 극단주의자들과 함께 오늘 이 자리까지 우리를 몰고 왔다. 그리고 그건 대단히 역겨운 일이다.
모린 도드는 칼럼니스트 겸 작가로 1999년 언론인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실력파 칼럼니스트이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NYT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약했고 백악관 주재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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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도드 칼럼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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