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니 골이 깊었을까, 입사 10년만에 특별승진을 두번이나 하다보니 주변의 질시가 많았다. 1984년 시작한 회사생활, 잔꾀에 능하지 못했다. 회사의 메뉴얼대로 했다. 그 메뉴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사원이라는 말이 내게까지 들렸다.
그래서 그렇게 거칠게 없다는 듯 건방져 버렸나. 어느 날 필자가 주재하는 미팅에 직원이 또 늦었다. 한두번 늦은 게 아니었다. 뒤에 서있게 하고는 과장에게 그 분 집에 전화를 돌리게 했다.
‘여보세요, 사모님, K소장 출근하셨습니까, (‘… …’) ‘ 집안에 있는 모든 시계를 30분씩만 앞으로 좀 돌려 놓으세요.’ (‘.., ..,’) 다시는 지각하지 말라고 했던 조치라고 했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최악이었다.
그리고 나는 명퇴하고 오갈데가 없어서 미국까지 건너왔다. 교회라고는 모르고 살던 사람이 친지, 친구 하나 없는 만리 타향에 와서 깜깜한 교회 바닥에 엎드렸는데 많고 많은 죄악(?) 중에서 왜 유독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그 때도 회개했지만 K소장과 가족분들께 다시 또 사죄 드린다. 팀워크와 합심이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던 마케팅 현장은 살벌한 전쟁이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 순간에도 알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일이었다.
세상 그 어느 곳이든 8:2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걸 요즈음에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산다. 상위 20%만 잘 관리하고 가면 편하고 쉽다. 그러나 전체 총량에는 금방 한계가 온다. 행복도 가치도 마찬가지다. 하위 50%를 평균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도자가 포기하면 이 세상은 기대할 미래가 더 이상 없다.
결국 모두가 다 아는 이걸 해결하지 못해서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버려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것은 인류의 숙명이자 나의 길이기도 하다.
5월이 한국민주화의 격동이었다면 6월은 조국과 분단의 흑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달이다. 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전쟁(6/25), 현충일(6/6), 정전협정일(7/27), 이 어두운 한반도 역사가 마감될 줄 알았던 6.15 남북 공동선언(6/15), 각 일정마다 열리는 기념식에 두루 참석해서 느낀 소회는 분단 77년 만큼이나 당위에서 공감으로 건너는 징검다리가 아주 멀찍멀찍하다.
‘당위와 공감’, 아무리 옳고 맞는 일도 공감을 얻지 못하면 이루기 힘들다. 공감만을 강조하다 보면 당위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다. 나라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통일도 해야 한다. 독도는 우리땅이다. 종군위안부는 아주 나쁜 인륜 범죄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 이 모든 것은 당위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공감의 전단계인 설득의 피로감 때문인지 시도조차 않는다. 그러니 각자의 길밖에는 관심도 없다. 통일을 강조하면 안보를 포기하는 줄 안다. 안보를 강조하면 반통일로 본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공감이 필요하고 또 필요할 때다. 서로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개전 2달을 넘어서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의 속설이 무너지고 있다. 아프라고 때린 손이 더 아프다. 누가 승리고 누가 패배인가, 당사국 아닌 곳에서도 아우성들이다. 전세계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북한이 가장 유리해졌다는 분석이 많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만 탓할 일인가, 전쟁을 부추키지는 않았다고 피해갈 일들도 아니다. 방관도 죄다. 강건너 불구경이 아닐 것이라고 수차 경고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 더 이상 비굴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목도하라. 공멸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뼈대도 중요하지만 근육과 살도 사람에게는 꼭 필요하다. ‘옳고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고 싫은 것’ 까지도 살피자는 것이 설득이요, 공감이다. 모두가 좀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이럴 때 국제사회의 격랑에 함부로 춤추는 것은 뼈져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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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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