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꼭 닮은 내가 건강에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당 수치와 혈압이다. 그래서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난다. 일부러 자주 만나는 셈이다. 이유는 그래야 결국 당 수치와 혈압에 직접 영향이 있는 체중 조절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체중 조절만큼 스트레스를 더 많이 가져다 주는 것도 없는 듯 하다. 의사와의 약속 날짜를 어느 정도 남기고서는 특별 다이어트에 들어간다. 평소에 좋아하던 탄수화물 섭취도 바짝 줄이고 더 열심히 체중계에 몸을 달아 본다. 그러다가 의사와의 약속 날짜가 다 되었는데도 체중이 줄지 않으면 약속 날짜를 아예 연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배주림도 같이 연장되는 셈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원하는 만큼의 체중 조절이 된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의사를 만날 때 체중 재는 것을 도와주는 간호보조인에게 너스레를 늘어 놓는다. “아니, 피검사 한다고 물을 많이 마시고 오라고 했으니 체중 수치에서 좀 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올 때 마다 말씀 드리는데 이 체중계 고장 났어요. 고치셔야 합니다. 저희 집 것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덧붙여 정확한 체중은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해야 하니 입고 있는 옷 무게도 빼 주어야 한다고 읍소한다. 정장 차림의 나는 옷 무게가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번은 의사에게도 체중계가 분명히 고장난 것 같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했더니 의사가 체중계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매번 의사가 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앞으로 운동도 제대로 하고 음식도 조절해 3개월 후에 올 때는 좀 더 좋은 결과를 보이겠다고 약속한다.
혈압도 마찬가지이다. 긴장을 많이 하면 혈압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간호보조인이 혈압을 측정할 때마다 높으면 안 되는데 하고 조마조마해 하니 혈압이 안 높을 수가 있겠느냐고 따진다. 그러니 측정된 혈압에 일정 수치를 디스카운트 해 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을 편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진료를 해 주어야 하는데 부풀려진 체중과 혈압 수치를 갖고 하면 되겠느냐고 억지 주장을 펴면서 말이다.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은 후 내가 의사에게 농담 반 진담 반 부탁하는 게 있다. 피검사 결과가 안 좋으면 전화하지 마라. 메시지도 남기지 마라.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3개월 후에 다시 올 것이고 그 사이에 조심하겠다. 그리고 의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내가 보상심리 차원에서 하는 게 있다. 그 동안 조심하느라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못 먹은 억울함을 복수하는 거다. 보통 그 복수는 가까운 맥도널드에 가서 한다. 기름이 절절 흐르는 그리고 혈압을 올리는 염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소시지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는다. 그렇게 해서 먹는 소시지 샌드위치야 말로 그 어느 고급 식당의 비싼 요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두 주 전 의사 선생님과 만나고 나오면서는 지인을 한 명 꼬드겨 그 것 보다도 더 심하게 복수하기로 했다. 브런치로 순대를 듬뿍 한 접시 시켜 먹을까 했지만 커피도 마셔야 하겠기에 아이홉(Ihop) 식당으로 달려갔다. 가기 전 까지는 아침 메뉴에서 따뜻한 음식으로 먹으려고 했는데 동행한 지인이 주문한 음식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점심 메뉴에 나와 있는 베이컨도 듬뿍 담긴 큼지막한 햄버거를 시켰다. 사이드 디쉬로 팬케이크 두 장을 곁들여서 말이다. 꿀맛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 디저트로 밀크쉐이크 한 잔을 시켰다. 그래도 지인이 초콜릿으로 시켰을 때 나는 딸기 맛으로 자제했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다. 물론 한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셨으면서 말이다.
당 수치를 조심해야 하는 나로서는 정말 피해야 하는 음식들이었다. 내 의사가 보았다면 아마도 단단히 야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달에 한 번 정도는 의사와 체중계, 그리고 혈압계 모두 나를 용서해 줄 수밖에 없다고 눈을 질끈 감고 웃으면서 뱃속에서의 행복을 느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먹고 싶은 것도 다 제대로 못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도 던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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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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