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스런 노래도 다 있구나 했다. 그 선배님은 야영을 가서 텐트를 치고 모닥불에 둘러 앉은 모두에게 소주잔을 들게 하더니 ‘명태’를 불렀다. 파격이었다. 기존에 들었던 노래가 아니었다. 무슨 연극의 대사 한 대목을 하는 줄 알았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중략) 에짚트의 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詩人이 밤 늦게 詩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詩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 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허허허허...)명태 (헛허허허...) 명태라고 (음헛허허... 쯧쯧쯧쯧.)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이민으로는 환갑이 훨씬 지나버린 나이 47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몇가지 있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이유 하나는 ‘겨우 40중반에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절망감이 그것이다. 40중반이면 미국에서는 한참 청년인데….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맹진하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 중반 한국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다. ‘IMF’가 한국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계 전반은 꼼짝없이 국가적 중죄인(?)이 되어야 했고 세계화니, 글로벌이니, 구조조정, 효율화, 명퇴가 일상이 되면서 하루하루를 헐떡였다. 누구를 탓하고 말고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못믿는 극도의 불신의 시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상호 주체간에 신뢰는 깨져버렸고,개인 대 개인, 심지어 가족 형제끼리도 단절의 벽앞에 속절이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레퍼터리는 이른바 ‘꼰대론’ 이었다. 기성세대는 트렌드에 둔감하고, 변화를 싫어하고, 신세대를 이해 못하고 고리타분하며 고여 썩은 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나이 몇살 더 먹은 죄(?)는 정말로 혹독했다. 무조건 철저하게 속죄하고 반성을 아무리 한다해도 젊은이들 세계에서는 조롱과 청산의 대상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세상을 물려준 ‘원죄’는 무슨 변명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지금의 60전후세대를 충효, 장유유서의 마지막 세대라고들 한다. 선배들에게는 고개도 제대로 못들면서 후배들의 눈치는 살펴야 하는 평생 어정쩡한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나고 보니 사회와 국가를 바꾸겠다고 한쪽에서 젊은 남성대표를 내세워서 ‘꼰대론’으로 성공(?)했다 싶으니까, 상대쪽에서는 젊은 여성을 내세웠다. 어쩌나 보자 하고 양쪽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제 한창인 청춘 남녀가 만나면 앞에 놓인 접시의 빵을 서로 다정하게 나누면서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미래와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려니 했는데 서로 자기의 빵을 등 뒤로 감추고 2,30대남자는 남자들끼리 모이고, 2.30대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여서 어느쪽의 빵이 더 큰가를 가지고 서로 두눈을 부라렸다.
이런 마당에 민족이니, 역사니, 인류,환경이 끼어들 틈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어떻게 결혼도 하기 전부터 가장 오붓해야 할 남녀 사이가 ‘성(性)을 사이에 두고 투쟁부터 연습하고 있나.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오늘도 그저 고개를 푸욱 숙이고 쫙쫙 찢어져 소주의 안주가 되어야 하는 심정일 뿐이다.
‘지성(知性)’하면 떠오르는 직업은 당연히 대학교수다. ‘당신들은 도대체 그동안 젊은이들을 앞에 놓고 뭘 가르쳤습니까, 하려다 아차 싶다. 밥벌이도 없이 양 어깨가 쳐져서 대학문을 나서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심정을 다시 헤아려 보니 그 어느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밥그릇 챙겨주기도 벅찬 현실에서 한가하게 뭘 주고 말고 했을까,
민주평통에 들어와 보니, 자의든 타이였든 같은 또래의 청년 평통자문위원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 세계에서는 이들을 ‘화성인’들로 볼 것만 같다. ‘거기 뭐하는 곳인데?’ ‘민주, 평화, 통일, 자문….’ 학창때 부족했던 인생관, 세계관을 세워나가는데 이만한 곳도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민주평통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국제, 외교, 남북, 경제, 전쟁, 평화 같은 가치와 꾸준히 접하게 되어있고, 학습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값진 투자요 경험이다. 대견스럽고도 장하다.
그들을 위한 ‘명태’가 되는 것이라면 쫙쫙 찢어지는 것도 기꺼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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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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