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0일 흘렀다. 굵직한 일들이 하도 많아 몇 년은 지난 듯하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74년의 ‘청와대 시대’를 끝낸 대사건이었다. 훗날 윤 대통령의 치적으로 기록될지 패착으로 기억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용산 이전도 칭송 받을 확률이 높다는 짐작은 가능하다. 마치 정조대왕이 좋은 정치로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꽃피웠기에 화성 건설이 빛나는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조는 탕평책으로 정치와 사회의 통합을 이뤘다. 인재 등용에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았고 재야의 남인까지 끌어안아 정약용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발굴해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서얼 출신 북학파 인재들도 두루 써 신분의 한계도 깨뜨렸다. 경제에서는 특권적 상행위를 타파하는 통공 정책을 단행함으로써 시장에 자유를 불어넣었다. 그 덕에 상공업이 크게 발전하고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민생이 살아났다. 무엇보다 정조가 탁월했던 점은 자신의 오른팔 격인 홍국영에게 권력이 과하게 쏠리자 즉시 내몰아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정조는 탕평 정치의 도덕적 명분을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는 아직 정조의 탕평 정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검찰 출신의 편중 인사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장에 ‘재계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특수통 검사 출신을 발탁했고 공정거래위원장에 검사 출신을 내정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에는 전 대검 형사부장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는 전 순천 지청장을 앉혔다. 대통령실에는 법률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 외에도 인사기획관·인사비서관·총무비서관·부속실장까지 검찰 출신을 기용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푸념이 사방에서 나올 만하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원칙”이라고 답했다.
더욱 아쉬운 부분은 윤 대통령이 측근인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에 인사 검증까지 맡겨 권한을 몰아주는 모습이 정조가 측근 홍국영을 대했던 태도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경제에서도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나 강조한 만큼 기업들이 자유를 체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윤 대통령의 임기 초반 정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야당의 거듭된 자충수 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로 대선에서 졌는데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엉뚱하게 해석하며 지방선거에 임해 참패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5년간 ‘내로남불’ 행태를 반복하고도 반성할 능력조차 없는 민주당에 비하면 윤석열 정부가 더 나아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파 정부라면 좌파보다는 낫다는 식의 상대적 도덕성 우위에 만족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좌파와 달리 법질서와 사회윤리를 중시하는 우파는 절대적 도덕성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대통령직을 맡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검사 출신들을 권력 기관 곳곳에 포진시켜 나라의 운명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정부 요직과 로펌 등을 오가며 권세를 누려온 모피아(재정·금융 관료 그룹)들에 더 큰 기회를 선사하는 뜻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기업들에는 명실상부한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기업인들을 처벌하는 데 능한 검찰 특수통들과 기업 규제 기술자인 모피아들에 칼자루를 쥐어주고 외치는 자유에는 공포의 기운이 여전히 짙다.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를 강조하면서 왜 국가 요직에 시장과 경제에 정통한 기업인을 기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은 지난해 재보선과 올해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국민의힘에 세 번 연속 승리를 안겨줬다. 주권자로서 윤 대통령에게 올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생을 살리고 통합의 정치를 이뤄야 할 책무가 그만큼 막중하다. 윤석열 정부의 남은 1,796일에 거는 기대가 정말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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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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