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가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황급하게 이전되었다. 서둘러 이전해야 할 합리적 이유나 뚜렷한 동기 제시도 없었고, 국민의 여론 수렴과정도 없었다. 국가 안보는 물론 정치적 문화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대통령 관저 이전을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일머리 없이 무엇에 쫓기듯 실행하였다. 그러다보니 대통령 관저 이전이 ‘청와대는 흉지’라는 무속인들이나 풍수가들의 주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요,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청와대 이전을 지지하는 풍수가들은 청와대 자리가 풍수적으로 흉(凶)하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조선 역사에서 경복궁이 많은 해를 입었고, 청와대의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했다고 한다.
어떻게 청와대에 살았던 역대 대통령들의 윤리적 일탈, 정책적 과오, 개인적 불행 등의 원인이 청와대 터 때문인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주장이다. 물론 현재의 청와대 건물이 건축학적으로나 업무 효율성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럼에도 이보다는 이전의 실질적 이유로 청와대 흉지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물론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중국과 한반도에서 발전되어 온 풍수사상이 담고 있는 생활의 지혜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 풍수사상은 자연 곧 땅과 공간의 해석과 활용에 대한 동아시아의 고대 사상으로, 길지 곧 이상적인 집터의 조건으로 장풍득수(藏風得水)를 말하고, 인간의 본원적 욕구인 흉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추길피흉(追吉避凶)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일정부분 오늘날의 환경학, 인문지리학, 주거학 등의 개념을 두루 포함한 생태주거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안락한 주거생활을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 풍수사상이 음양오행론과 연결되면서 생태주거학의 개념을 넘어 인간의 운명론으로 확장되었다. 지기 곧 집터의 기운이 살고 있는 사람이나 후손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에 영향을 주고, 조상의 묏자리가 후손의 출세와 발복(發福)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증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 주장이며, 우주적 불공정이자 정의의 왜곡이다. 음양오행론과 연결된 풍수론은 사람들을 길흉화복과 타력적 운명에 매달리게 하여, 다분히 미신적, 의타적, 이기적 삶의 방식을 초래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은 ‘풍수집의’에서 당시 만연하던 풍수사상의 폐해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상 묏자리를 잘 잡아야 후손이 잘된다고 믿어, 백성들은 집안마다 좋은 묏자리를 찾아 이장(移葬)하여, 두세 번 이장은 보통이었다고 한다.
왕가에서는 이른바 명당을 찾아 빈번하게 왕릉을 이장하였다. 결과는 어땠는가? 고비용 장례와 잦은 이장으로 백성들은 가산을 탕진하였고, 왕실은 국고를 소모했으며, 기우는 국운은 막지 못했다. 당시 명당 묘지 터를 차지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산송(山訟)이 노비소송, 토지소송과 함께 3대 소송이었다고 하니 풍수사상의 폐해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준다.
청와대는 흉지가 아니다. 세상의 땅은 모두 나름의 생태학적 특성이 있다. 거기에 맞게 생태주거학 원리에 따라 쓰임새를 정하여 활용하면 된다. 땅이 인간의 길과 흉을 만들지 않는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 천도무친(天道無親)을 말했다.
자연은 인간사에 사사롭게 개입하거나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과 흉의 씨앗은 사람이 만든다. 청와대 터는 죄가 없다. 길과 흉의 책임은 애꿎은 땅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청와대 터의 길흉 여부는 절대자 곧 하느님 앞에 그리고 국민과 역사 앞에 선 지도자의 마음과 윤리, 정치적 행위에 달려있다.
요즘 한국 언론과 대중매체에 풍수가들이나 무속인들의 주장이 소개되는 빈도수가 부쩍 늘었다. 여기에 길지가 있고 저기에 화가 있다며 사람을 유혹하고 불안과 두려움을 준다. 근거 없는 망설이다.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복을 불러오는 천하의 길지는 땅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에 있다. 마음에 따뜻함, 옳음, 바름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며, 겸허히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진인사대천명의 삶이 천하의 길지이다. 나머지는 하느님 곧 하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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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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