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논의 금기시하면서 포털에도 정보 없어…홍콩서도 추모촛불 꺼질듯
▶ 홍콩매체 “본질은 애국민주 운동” 재평가 촉구…가까운 미래엔 어려울듯
대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중국인들이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개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군의 유혈진압에 스러져 갔던 톈안먼(天安門) 사태 33주년을 맞이한 4일(이하 현지시간) 베이징 시내는 평온했다.
민주화 시위는 1989년 4월 중순부터 시작됐지만, 6월 3일 시작된 유혈진압이 마무리된 6월 4일이 톈안먼 사태를 기념하는 날이 됐고, 그로 인해 톈안먼 사태는 '6·4'로 불린다.
이날 낮 기자는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도심의 창안(長安)대로를 달려 톈안먼 광장 수백m 앞까지 갔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안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직업을 물었고, 기자라고 답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안 했다"고 답하니 "방역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톈안먼 광장 쪽으로) 갈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신 기자의 접근은 불허했지만 이날 톈안먼 광장 주변의 분위기는 '특별한 날인가' 싶을 정도의 삼엄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톈안먼 광장으로 가는 도로 양측 곳곳에 경찰차와 공안, 무장경찰 등이 배치돼 있었지만 광장 쪽으로 가는 도로 자체를 봉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국 사회에서 톈안먼 사태는 금기어 수준을 넘어 '없었던 일'로 취급되고 있다.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오늘의 역사' 항목에는 1989년 6월 4일 일어난 일로 '이란 호메이니의 최고지도자 피선'이 소개돼 있고 검색창에 '6·4'를 입력하면 작년 6월 4일 부르키나파소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 등이 검색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 가족의 진상조사, 사과, 보상 요구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1980년대말 발생한 그 정치 풍파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 짧게 답했다. 이 질문과 답변은 외교부 홈페이지의 대변인 브리핑 전문 서비스에도 빠져 있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공식 규정은 자오 대변인이 언급한 '정치 풍파'와 '동란'이다.
작년 11월 중국 공산당이 채택한 제3차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격변했다"며 "국제사회 반(反) 공산주의·반 사회주의 적대 세력의 지지와 선동으로 인해 국제적인 큰 기류와 국내의 작은 기류는 1989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엄중한 정치 풍파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의는 시위 진압에 대해 "당과 정부는 인민을 의지해 동란에 선명하게 반대하는 것을 기치로 해서 사회주의 국가 정권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수호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당의 공식 입장이 존재할 뿐, 톈안먼 사태를 둘러싼 일체의 공적 논의는 중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시각에서든 부정적인 시각에서든 모두 금기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인터넷 방화벽을 우회해 외국 자료를 살펴보지 않는 한 톈안먼 사태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조차 접하기 어렵다.
베이징에 사는 한 20대 중국 청년은 톈안먼 사태에 대해 젊은이들이 잘 아느냐는 질문에 "잘 알지 못한다"며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젊은이들에 대해 안타깝게 느꼈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명보는 4일자 사설에서 당시 학생들 시위에 대해 "본질은 애국민주 운동"이고, "6·4사건(유혈 진압)은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지적한 뒤 정당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썼다.
사설은 "당국이 폭력적인 수단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사망자 유족은 아직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다"며 "6·4를 바로잡는 것은 역사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며, 사망자가 안식하고 유족들이 응어리를 풀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하지만 당시 시위와 강경 대응이 중국 사회에서 공식적인 재평가를 받을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올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특히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식 '전과정 인민민주'를 표방하며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에 철저히 선을 긋고 있는 현 시진핑 체제에서는 계속 '없었던 일'로 치부될 공산이 커 보인다.
중국 본토는 물론 그간 꾸준히 추모 활동이 이뤄졌던 홍콩에서도 올해는 관련 집회가 원천 봉쇄된 가운데, 희생자 유족과 살아남아 해외로 터를 옮긴 당시 시위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미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회'(the Mothers of Tiananmen)는 진상 규명과 문책, 보상 등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한 인권 단체를 통해 지난 1일 발표했다.
또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당시 시위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미국에 망명한 왕단은 미국에서 6·4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중국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대만은 공개적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4일 성명을 통해 톈안먼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잔인한 폭력"으로 규정한 뒤 "용감한 개인들의 노력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매년 우리는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위해 일어섰던 사람들을 기념하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톈안먼 사태와 관련한 홍콩에서의 집회가 전면 불허된데 대해 "우리는 이런 난폭한 수단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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